『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플로리안 아이그너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Der Zufall, das Universum und du』의 저자인 플로리안 아이그너Florian Aigner는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이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양자역학 만큼 어렵진 않다.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쓰여진 평이한 책에 속한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동안 겪었던 실패들로 인한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고,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던 사람에겐 그 성공이 오로지 본인의 능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님을 깨닫고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해줄 것이다. 즉, 세상만사가 운칠기삼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탁월한 책이다.

저자는 인간이 성급하게 패턴을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아무 관련이 없는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사건들을 인과관계로 연관지으려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야구선수가 매경기 연속안타를 치면 양말을 안갈아 신는다던 지 하는 징크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징크스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이용되면 큰 문제 없이 그냥 이야깃꺼리로 머무르겠지만,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징크스를 거시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진다. 개인적으로는 시스템 트레이딩을 위한 차트 분석을 할 때 자주 저지르는 오류이기 때문에 읽으며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시스템을 만들 때는 항상 우연이 만들어진 상관관계인지 정말 인과관계인 지를 고심해야 한다. 늘 그렇듯 정답은 없지만...

인간은 서투른 우연발생기라는 쳅터도 매우 흥미로웠다. 1부터 20까지의 숫자를 고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7이나 13같은 전통적인 행운/악운의 숫자를 제외하는 경향이 있고, 짝수보다는 홀수를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또한, 뭔가로 나뉘어지지 않는 소수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그래서, 통계적으로는 모든 숫자가 5%의 가능성이 있지만, 조사해보면 17이라는 수를 고른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한다. 재미있지 않은가! 로또에서 연속된 숫자가 나오는 통계적으로는 당연히 합당한 가능성이지만 조작되었다고 생각한다. 객관식 시험문제를 풀다가 연속으로 다섯번 정도 같은 번호가 나오면 자신있게 풀었다고 할지라도 의심을 하게 된다. 인간은 확실히 이런 면에서 허점이 많다.

책을 읽고 나니 조금 맥이 풀리는 기분이 든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연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또한, 그렇다고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닌데도, 세상에는 보상받지 못하는 노력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세상의 별의별 자기개발서들이 노력하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고 외치는 반면에, 물리학자에 의해 씌여진 이 책은 노력하는 것은 가상하나 그래봤자 세상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