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루지

통영에 루지를 타는 곳이 있다고 하여 계확을 짜서 방문해 보았다. 공식명칭은 통영 스카이라인 루지인데 사람들은 그냥 통영 루지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내가 머무르는 거제도 아주동 숙소에서 통영 루지를 타는 곳까지는 자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곳이지만, 시내버스를 이용하다보니 두 번 갈아타야 하고, 시간도 두 배 이상 걸렸다. 역시, 대중교통이 서울같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은 아니다.

원래는 온라인으로 입장권을 구입해서 현장에서 표를 사기 위해 대기하는 수고로움을 피하려고 했으나 몇 달 전부터 온라인 티켓 구매가 막혀서 현장 구입방법밖엔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도 20분정도 줄을 섰더니 표를 구할 수 있었다.

티켓은 1회이용권, 3회이용권, 5회이용권 중 선택할 수 있고 가족할인 같은 것이 적용되지만, 혼자온 난 해당사항이 없으므로 3회이용권을 구입하였다. 티켓에는 스카이라이드라고 이름붙인 리프트 사용권이 포함되어 있다라고 생색을 내고 있다. 참고로, 리프트 안타고 걸어서 올라가는 옵션은 없다.

티켓을 사고 난 후에 할 일은 자신의 머리크기에 맞는 헬멧을 골라 착용하는 것이다. 헬멧은 성인이 착용할 수 있는 크기로 중, 대, 특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어떻게든 중 사이즈를 우겨넣어 보려 했으나 실패하여 대 사이즈를 착용하였다. 헬멧사이즈마다 색깔을 달리 해놓았는데, 예를 들어 중은 노란색, 대는 파란색, 특대는 오렌지색이다. 헬멧선택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이겠지만, 탑승객의 머리 크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ㅜ.ㅜ 머리 크기 정보를 내주고 안전을 취하는 방식이다. 다행히(?) 남자들은 파란색 헬멧을 착용한 경우가 많아 챙피하지는 않았다.

이제 리프트를 타고 출발지점으로 올라갈 차례다. 다시 줄을 서야 한다. 대기 시간이 20분 이상인 듯하다. 놀이 공원에서 놀아 기구를 타려면 즐기는 시간은 몇 분인데 기다리는 시간은 몇십 분인 것이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아서 참 싫어하는 편인데, 루지 타러 와서 이렇게 인생의 축소판 같은 경험을 해본다.

리프트는 출발 후 몇 초 동안은 고소공포증을 느끼게 되는데, 그 후에는 무난하게 올라간다. 중간에 루지 트랙이 보여서 카메라를 꺼내기도 했다. 얼마 안있어 리프트가 우리를 출발지점까지 데려다 주었다. 기발한 점은 리프트 뒤에다가 탑승객 수만큼의 루지 카트를 달고 올라간다는 점이다. 개개인이 장비를 따로 들고 타는 등의 수고로움은 일체 없다.

출발지점에서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지는데, 당일 기준으로 처음 루지를 타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 처음 타는 사람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해준다. 여기서 루지 카트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 루지는 동계올림픽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자체적으로는 무동력이며 순전히 트랙의 경사를 이용해 관성에 의해서 속력이 나오는 방식이다. 물론, 올림픽에 보았던 그런 수준의 속도가 나오지는 않는다.

이제 드디어 루지를 경험할 차례가 되었다. 트랙은 두 코스가 준비되어 있다. 트랙 이름이 “단디”와 “해라”이다. 토속적임 이름에 피식했다. “단디”보다는 “해라”가 초보자용 트랙인 듯하여 이 코스를 선택해 보았다. 어린이들도 신장이 135cm만 넘으면 탈 수 있을 정도로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아서 생각보다는 속도가 잘 나오지는 않았다. 게다가 속도가 붙을만 하면 코너가 나타나 속도를 붙일 틈이 별로 없다. 그렇게 첫번째 루지 체험은 끝이 났다.

3회이용권을 샀으니 두 번의 기회가 남았다. 다시 줄을 서야 한다. 표사는 줄을 다시 설 필요는 없고 헬멧도 쓰던걸 그대로 쓰면 되니 리프트 타는 줄만 다시 서면 된다. 아까보다는 줄서는 시간이 살짝 덜 걸리는 것같다.

이번에는 오리엔테이션을 생략할 수 있다. 첫번째 출발 후 얼마 안가서 손등에 교육받았다는 의미의 도장을 찍어 주고 그것을 확인한 후 그냥 내려 보내는 식이다. 이번에는 “단디” 코스를 선택해 보았다. 이 코스는 확실히 직선 코스가 길어서 “해라” 코스보다 속도가 잘 나온다. 속도가 좀 붙으니 훨씬 더 재미있다. 연속된 코너를 오래전 니드포스피드 하며 익힌 코너웍으로 빠르게 내려올 수 있었다. 루지 카트와 한 몸이 되어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치환해 갔다. 두번째는 확실히 재미있었다.

이제 딱 한번만 남았다. 이렇게 재밌을 지 알았으면 5회이용권을 선택할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입장권 구매시간을 제외하고 리프트 대기시간과 리프트타는 시간, 루지를 타고 내려오는 시간을 합쳐서 35분 정도 걸리는 듯 했다. 12시부터 타기 시작해서 5시까지 다른 일정을 만들어 놓지 않았기에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었는데...

세 번째 타러 올라와보니 이제는 오히려 오리엔테이션 받는 그룹보다 경험자 그룹쪽에 사람이 밀린다. 또한, 난이도가 조금 더 높은 “단디” 코스에 사람들이 몰려 정체구간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도 트랙 초반에 재주를 부려 이리저리 추월을 해내가니 트랙 중반부터는 속도를 좀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내려오다가 강적을 만났다. 꼬꼬마 여자아이였는데 내가 인코스로 추월을 시도하려는데 뒤돌아서 나를 슬쩍 보더니 인코스를 블로킹 한다. 그러더니 내가 생각해 두었던 아웃-인-아웃 코스를 타고 빠르게 다음 코너를 유유히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뭐지? 아빠가 레이서인가! 놀라는 사이 트랙의 끝이 다가온다. 이렇게 3회이용권을 모두 사용해 버렸다.

내려와서 다시 줄을 서기 전에 매번 기념품관을 지나게 데는데, 여기서 트랙에서 찍힌 사진을 구입할 수도 있고 추가로 이용권을 구매할 수 있기는 하다. 살짝 고민을 하다가 그냥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나중에 트랙이 하나 더 생기면 다시 기회를 마련하던지 할 예정이다. 참고로, 추가 트랙이 공사중이고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처음 루지를 타러 올 때는 시내버스로 오느라 고생도 했고 일요일 낮잠이라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등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으나 타고 나니 그러한 불쾌함은 가볍게 사라져 버리고 트랙을 내려 오면서 느껴졌던 속도감만이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