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5

갈매기살 먹고 체했다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던 돼지고기를 해동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루정도 전에 냉장고로 옮겨놓는 것이고 거제도로 내려와서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는 그렇게 해왔다. 두번째 방법으로는 전자렌지에 돌리거나 밀폐시켜서 물에다 넣어 놓는 것이다. 냉장고로 옮겨 놓는 작업을 깜박했는데 저녁 시간은 넘었고 고기는 먹고 싶어 물에다 넣어 놓는 방법을 선택했다. 여기서 난 큰 실수를 하게 된다. 밀폐에 실패한 것이다.

몇 시간 후 돌아와 보니 밀폐는 커녕 고기를 감싸놓은 랩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가서 사실상 돼지고기를 물에 담궈둔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 상황에 처음 든 생각은 과연 녹았을까였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육즙이 다 빠져나가지는 않았을까였다. 두 가지 예상은 모두 맞았다. 고기는 잘 녹아서 말랑말랑해진 상태였고, 나중에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보고 나서야 인지하긴 했지만 육즙을 많이 희생당한 상태였다.

당연히 고기는 맛이 없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맛이 없는 갈매기살은 처음이었다. 고기가 이렇게 맛이 없을 수도 있구나! 육즙이 다 빠져나간 고기를 꾸역꾸역 입안으로 집어 넣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그냥 소금과 후추에 찍어 먹으니 그리 못먹을 맛도 아니었다. 오히려 에어프라이어에 넣어둔 양파와 마늘은 맛이 있었다. 양파보다 맛없는 고기라니...

문제는 그 이후 밤에 벌어졌다. 속이 메스껍다. 게다가 몸살기운이 느껴진다. 이렇게 강하게 오한이 느껴지긴 처음이다. 두꺼운 이불 속에 들어가 있는데도 오들오들 떨린다. 속도 안좋고 몸살기운이 있으니 이것이 체한 것인지 몸살이 와서 소화가 안된 것인지 햇갈린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체하면 오한이 온다고 한다. 자주 체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강하게 오한에 시달린 적은 처음이다.

결국, 새벽에 갑자기 잠이 깨면서 현기증이 났고 침대에서 2미터도 안되는 화장실까지 기어 가다시피 하여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 말았다. 보통 울렁거리는 상태는 그대로 시간이 흘러 진정이 되거나 아니면 토하거나 그 둘의 갈림길인데 그 갈림길에서 내 몸은 토하는 쪽을 선택하였다. 화장실에 널부러져 고통속에서 게워내고 나니 좀 살 것 같다. 며칠 전 화장실청소를 해놓길 잘했다. 혼자 살면 가장 서러운 것이 아픈 것이라고 하던데 그런 말은 덜 아파서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 못차릴 정도로 아프면 서러움을 느낄 새도 없다.

새벽에 깬 것을 감안하면 잠을 꽤 잘 잔 편이었다. 상당히 편안하게 수면을 취했던 것같다. 출근도 그럭저럭 잘했지만 만약을 위해서 점심은 스킵하였다. 속은 약간의 메스꺼움만 느낄 정도로 회복을 했지만 안에 들어간 것이 없으니 일이 안된다. 힘도 없고 머리도 잘 안돌아 간다.

당분간 돼지고기는 자제할 생각이다. 보고 싶지도 않다. 가장 좋아하던 갈매기살에 배신을 당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서글프다. 밀폐에 실패하여 육즙을 다 빼앗긴 것도 나이고, 그 맛없는 고기를 미련하게 입에 쑤셔 넣은 것도 나인데 괜시리 갈매기살이 미워진다.

by 이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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