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3

『직업의 지리학』 엔리코 모레티

누군가의 서평을 보고 "읽을 책" 목록에 넣어 두긴 하였는데 딱히 기억이 없다. 그러다가 그 목록에서 다시 『직업의 지리학』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책의 내용이 그려질 듯 그려지지 않는 애매한 느낌이 꼭 읽어 봐야 겠다는 의지로 치환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지역으로 가야 좋은 직업이 많다 정도의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로 단순한 책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읽기 어려운 책도 아니다. 『직업의 지리학』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꽤 명확하다. 좋은 직장을 위해 기꺼이 먼 거리의 이동을 감수하는 것이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즉, 자기가 살던 터전에 안주하기 보다는 기회를 찾아 기꺼이 자리를 박차고 떠날 수 있는 자들이 더 좋은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일을 더 받을 수 있는 지역이 있게 마련이 아니던가!

"기꺼이 떠날 수 있는 자"들에 대한 통계를 내보았더니 유의미한 결과가 나타났는데, 대졸이상의 학력을 가진 부류가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부류보다 더 이동성이 높게 나타났고, 미국인들이 유럽인들보다 더 이동성이 높았다. 유럽인들 중 이탈리아인들은 극단적으로 이동성이 낮았는데,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과 함께 살아가는 가족적인 문화가 이러한 원인 중에 하나이다. 가족들과 떨어져서 많은 돈을 받는 것과 그럭저럭 생계를 유지하며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중 어떤 것이 더 행복한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재정적인 여유로움을 원한다면 심리적인 안락함을 포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많은 미래학자들이 지역적인 빈부격차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세상은 오히려 대도시로 더욱 집중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 저자인 엔리코 모레티는 전화나 온라인 채팅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일해야 역사가 이루어 지는 것이라면서,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생산성을 높여 주는 것인지를 역설하고 있다. 탕비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나누는 잡담일 지라도 그 안에서 뭔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것이지, 전화나 채팅으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도시로의 집중화는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며, 대도시에서 두터운 노동시장이 형성되므로 회사도 계속 대도시로 모이고 구직자들도 대도시로 모이게 된다. 특히나 대기업이 특정 도시에 자리를 잡으면 이러한 효과가 극대화 된다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애틀에 정착하면서 나타난 거대한 변화를 예로 들었다. MS가 정착하기 전까지는 시애틀이 그렇게 핫한 플레이스가 아니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난 후에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 저자는 미국과 같은 거대한 국가에서 이러한 통계를 냈지만, 과연 대한민국과 같이 영토가 작은 국가에서도 이러한 통계가 유의미할 것인가! 시애틀과 실리콘벨리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차로 13시간 거리나 떨어져 있다. 13시간이면 대한민국 어디든 갈 수 있는 시간이다. 같은 잣대로 이러한 통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맞는 것일까? 국내에서도 이러한 집중화 현상은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더 일어나는 현상이며, 좀 더 넓은 영토를 가진 일본 또한 도쿄에 산업이 집중되어 있다. 아마도 집중화된 도시가 여러 곳에 나타날 것인지의 차이가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선진국에서 이머징국가로 아웃소싱할 수 없는 일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요가 강사가 등장해서 무릎을 탁 쳤다. 저자는 이러한 일자리를 교역 불가능 직업이라고 표현해 놓았다.

by 이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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