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냉면 @할매함흥냉면

작년 초겨울 즈음해서 함경도에서 냉면집하다 6.25 때 거제도로 내려와서 계속 그 명맥을 잇고 있다는 집이 거제도 장승포쪽에 있다고 해서, 겨울에는 장사 안하는 줄도 모르고 방문했다가 허탕친 적이 있다. 그 냉면집이 바로 할매함흥냉면이라는 곳이다. 3월 1일부터 오픈을 한다는 것을 기억하곤 다시 방문해 보았다. 애초에 고객사와의 계약이 2월 15일까지였기에, 그냥 못가보고 귀경하나 싶었는데 연장되어 이렇게 방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건물 외부는 그럭저럭 치장을 다시 하긴 했지만 내부는 누런색 장판을 비롯하여 노포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의 인테리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전통 함흥냉면의 맛을 보기 위해서 참고 들어 갔다. 방에는 나를 제외하고 손님 한 명이 앉아 있었는데, 전 가게에서 손님이 나를 포함해서 두 명 뿐인 듯했다. 주중이긴 하지만 퇴근 후 저녁시간에 방문을 했는데 손님이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 물론, 거제 전체도 그러하고 특히 장승포쪽 상권은 무너진 지 오래되었기에 이해가 되긴 한다.

그런데, 냉면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다. 곱배기는 11,000원 일반은 9,000원인데 서울에서도 함흥냉면으로 이 정도의 가격을 받는 곳은 드물었기 때문에 가격표를 보고는 다소 당황했다. 상권은 무너져도 가격은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빗나간 고집같은 것이 있는 것같다. 거제도에서는 이런 빗나간 고집을 부리는 가게들이 널리고 널렸다.

일반적으로 평양냉면은 물냉면이 기본이고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이 기본이다. 특히, 전통 함흥냉면에는 가오리회가 기본으로 들어간다. 물론, 최근에는 회를 넣은 비냉을 특별히 회냉면이라 부르곤 하지만, 원래 함흥냉면에는 삭힌 가오리회가 들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전통 함흥냉면을 표방하는 가게 답게 회가 들어간 비빔냉면 곱배기가 서빙 되었다.

내가 이제까지 먹어 보았던 함흥냉면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젓갈의 향이 강렬하다는 점일 것이다. 아마도 가오리회에서 풍겨져 나오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 젓갈의 향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젓갈은 적당히 들어가면 감칠맛을 극대화 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이 젓갈의 비린내에 예민한 편이라 견디기가 힘들다. 젓갈 선호도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라 이것 때문에 할매함흥냉면이 맛있다 맛없다를 논할 수는 없겠지만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참고로, 내가 가장 맛있게 먹었던 함흥냉면은 대치동 강남면옥에서 먹었던 비빔냉면인데, 여기에도 젓갈이 들어가긴 하지만 딱 내가 견딜 수 있는 그 경계면에 가까울 정도로만 들어가 있는 편이다. 나갈 때 내 옆에 앉아 있다 먼저 자리를 떴던 손님의 냉면 그릇을 슬쩍 보았는데 꽤 많은 양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꼭 서울 사람 입맛에만 안맞는 것은 아닐 지도...

육수 또한 서울에서 맛본 면수와는 좀 다른 맛이 느껴졌는데, 계피의 향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계피향 또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카페에서 카푸치노 마실 때도 시나몬 파우더 빼달라고 이야기할 정도인데, 면수에 정성스레 계피까지 집어 넣었다. 나갈 때 물어보니 계피와 감초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비빔냉면을 먹으면서 맛이 없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은 케이스라 거침없이 곱배기로 주문한 것인데, 그냥 보통 양을 시킬 걸 그랬다. 전통이 있다고 다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할매함흥냉면 탐방은 이렇게 끝났다. 거제에서 내 입맛에 맞는 비빔냉면을 먹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은 정말 몰랐다. 비냉은 왠만하면 맛있는 게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