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정치학』 알베르토 알레시나, 에드워드 글레이저

『복지국가의 정치학』은 복지를 바라보는 유럽과 미국의 상반된 시각에 대한 책이다. 책이 출판된 시점은 2004년이고,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시점은 2012년인데, 지금 읽어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 보인다. 다만, 요즘들어 유럽에서 좀 더 오른쪽에 있는 정당들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지만 이것이 일시적인 것인지 트랜드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고 본다.

책을 선택할 때는 제목보다는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이기도 한 "누가 왜 복지국가에 반대하는가?"라는 부제에 끌렸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는 그 궁금증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풀려 있었다.

진보정당인가 보수정당인가를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편의상 단순화하여 세수를 늘리고 복지를 늘리려는 성향을 진보적이라 정의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세제 혜택을 늘리는 성향을 보수적이라고 정의하고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보수정당이 지지를 받느냐 또는 진보정당이 지지를 받느냐의 문제, 즉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는 당연히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을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요인들에 대한 정치공학적 지식을 상당히 업그레이드 할 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비례대표제와 지방분권제이다.

비례대표제와 지방분권제는 반대되는 역할을 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는데, 비례대표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구 의원의 수가 적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례대표제는 진보정당에게 유리하고 지방분권제는 보수정당에게 유리하다. 권력이 지방에 귀속되어 있는 경우, 투자유치를 위하여 세제 혜택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를 늘려서 인구유입을 증가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법인세율을 낮추거나 기타 세제혜택을 통해 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다. 반면, 집권 정당이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지방 권력과는 달리 복지를 늘리는 것이 효율적이기 떄문에, 중앙권력을 공고히 해주는 경향이 있는 비례대표제의 경우 진보정당에게 유리하다.

이때까지 비례대표제나 지방분권제 또는 지방자치제에 대해서 그냥 그러한 방법론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이런 제도가 정치공학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 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복지국가의 정치학』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소선거구제도 지방분권제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진보정당에게 유리한 중앙집권화된 정치제도를 선택하느냐, 보수정당에게 유리한 지방분권화를 선택하느냐 또한 유권자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제도도 바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미국이 유럽보다 지방권력이 강한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왜 미국은 이러한 제도를 갖게 되었는가! 저자는 이에 대한 핵심적인 원인에 대해서 인종적 분열을 지적하고 있다.

인종차별은 인간의 본질적인 성향이다. 인종차별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 완화시키고 표면화되지 않게 만들 수는 있지만,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그러한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성향은 복지제도에 대한 지지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일 수록 타인종에 대한 배타적인 성향이 영향을 미쳐 복지 제도를 축소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내가 낸 세금으로 나와 같은 인종이 혜택을 누리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다른 인종을 위하여 세금을 지출하는 것에는 더욱 인색해지게 된다는 뜻이다. 좀 더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이 유럽에 비해 복지 제도에 대해 인색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매우 당연해 보인다. 또한, 최근 유럽에서 극우정당들이 다시 힘을 얻고 있는 것이 난민들의 급격한 유입과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종 이외에도 유권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소득이동성에 대한 기대감을 들 수 있는데, 하층민이 중산층으로, 또는 중산층이 상류층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믿는 유권자들이 많을 수록 보수정당 지지도가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이야기다. 미래에 부자가 될 것인데 높은 세금을 좋아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한 유럽인에 의해 세워진 미국이라는 나라는 당연히 소득이동성에 대한 기대감이 유럽보다 훨씬 높은 경향이 있지만, 저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이 유럽에 비해 소득이동성이 높지는 않다고 한다.

미국은 이외에도 보수정당이 유리한 요인, 즉, 지방분권화된 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 요인을 갖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광활한 영토이다. 영토가 넓은 나라일 수록 지방의 권력이 커질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미국은 유럽에 비해 지방 권력이 클 수 밖에 없다. 또한, 미국의 대법원과 상원은 설립 목적 자체가 국가로부터 개인의 사유제산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미국을 좀 더 보수적으로 만든다.

반면에 유럽은 양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극우 정당이 어떻게 세상을 황폐화 시키는 지를 인지하고 있으며, 또한 마르크스 등의 공산주의자들이 활약할 여지가 있었기에 유권자들을 진보적으로 세뇌시킬 기회가 많았다. 결국, 진보정당과 보수정당간의 싸움은 유권자들을 어떻게 세뇌시키느냐의 싸움이고 그 싸움에서 유럽은 진보정당이 유리한 여건이 많았고, 반대로 미국은 보수정당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또는 읽은 후에 과연 국내 사정에 비추어 정치를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적어도 대한민국은 다인종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영토가 그리 넓지 않다는 점에서 진보정당에게 유리한 여건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북한이라는 변수가 어떻게 작용하느냐가 선거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매카시즘의 시대는 저물었기에 앞으로 국내 정치에서 보수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언젠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난 이 사실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