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8

안나

극장에 들어 가기 전만 해도 "믿고 보는" 뤽 베송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뤽 베송 감독의 영화 하면 떠오른는 것은 여전히 20여년 전에 제작된 제5원소 밖에 없다. 그 이후의 작품들이 대부분 별로 였다는 뜻이고, 따라서 "믿고 보는" 보다는 "믿고 거르는"에 더 가까운 감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대체적으로 그의 작품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폭망한 발레리안 마저도 그럭저럭 참고 봐줄 정도다.

안나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사샤 루스Sasha Luss가 마치 제5원소에서 처음 보았던 밀라 요보비치를 연상시킨다는 것이었다. 밀라 요보비치를 처음 보았을 때의 매력을 안나에서 열연한 사샤 루스에서 느꼈다. 뤽 베송 감독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여배우는 이런 스타일인 것인가!

배우보다는 모델로 더 잘 알려진 사샤 루스가 실제로 모델 생활을 했기에 극중 모델로 활약하는 초반만 보면 마치 잠시나마 사샤 루스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안나가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빼들기 전까지는!

현실적인 액션 영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코웃음을 치며 영화를 까내릴 수도 있겠으나, 미화되고 화려함이 담긴 액션씬과 미장센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안나 만큼 훌륭한 영화도 없다. 애초부터 가냘픈 모델의 몸매로 현실적인 액션을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이미 극장에 들어 왔다면 첩보 액션 환타지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 그렇게 봐달라고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갸녀리고 길쭉길쭉한 팔다리로 거구의 남자들을 무찌르는 모습은 묘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액션 영화라고 스토리가 마냥 산으로 가지는 않는다. KGB에서 활약하지만 늘 자유를 꿈꾸는 안나가 과연 자유를 찾을 수 있을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도 꽤 재미있다. 또한, 총을 쏴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기 보다는 일단 쏘는 장면부터 보여주고 그 다음에 왜 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편집 스타일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맛이 있다.

by 이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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