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 @대림미술관

하이메아욘전을 보러 오랜만에 대림미술관을 방문했다. 이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관심있어서 전시회까지 방문을 하는 것은 주로 회화나 사진쪽이라 산업디자인에 가까운 이 전시회를 그냥 스킵할까 했다. 그러다가 먼저 방문을 한 Soo가 개인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괜찮았다는 평을 해놓았기에 한 번 도전해 본 것이다. 하이메 아욘Jaime Hayon이라는 작가가 업계에서는 꽤 명성이 자자한가보다.

Soo가 도슨트를 추천하여 4시에 맞춰 도착하느라 여러 차례 전력질주를 한 끝에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도슨트가 스피커 고장으로 5분 지연되었던 도움(?)을 받았다. 4시 타임의 도슨트는 마치 유아교육과를 졸업했을 것같은 어투로 관람객들을 아이 다루듯 이끌어 주었다. 사인 이야기를 해서 작품 속에서 숨겨진 싸인 찾느라 엄청 집중해서 그림을 봤다.

Green Chicken
나도 닭다리가 네 개 였으면 좋겠다!

전시된 작품 중 가장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같은 작품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린 치킨"이라는 작품이다. 하이메 야욘은 치킨의 다리가 네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작품으로 옮겼고 이유는 전혀 다르겠지만 나 또한 강렬히 바라던 바였기 때문이다.

Checkmate
도슨트에 따르면, 안으로 접혀진 다리를 펼쳐 바퀴로 이동이 가능하여 실제 체스경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10여년 전, 유럽여행을 갔을 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어느 공원에 거대한 체스판이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꽤 인상깊었는지 잊혀지지가 않는데, 하이메 야욘은 이러한 체스판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도슨트에 따르면, 체크메이트라는 이 작품은 트라팔가르 해전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체스판으로 실제로 런던 대영박물관 앞에 조성된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되었으며, 당시에는 체스말 하나하나에 바퀴가 달려 있어 시민들이 직접 이 거대한 말들을 움직여 실제 체스 경기를 했다고 한다. 현재는 바퀴를 안쪽으로 접어 놔서 보이지 않는 상태로 전시되어 있다고.

흥미로운 사실은 스페인 출신인 하이메 야욘이 조국이 패전한 전투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유명한 작가가 한산도 대첩을 모티브로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상상해보자. 얼마나 파장이 크겠는가! 실제로 당시에 하이메 아욘이 조국에서 이 작품 때문에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Cabinet of Wonders
캐비넷 자체가 작품이고, 그 안에 7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근세 유럽에서 귀족들은 골동품 수집하여 놓은 방을 만들어 놓곤 하였다. 이러한 방을 Cabinet of Curiosities라고 했는데, 이것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 수상한 캐비닛Cabinet of Wonders라는 작품이다. 도슨트에 따르면 실제로 하이메 아욘이 부스 전체를 디자인한 케이스도 있는데, 이 부스도 그 중 하나이다. 엔티크한 느낌보다는 모던한 느낌으로 작품 안에 여러 가지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아쉬운 것은 이 부스 자체가 작품이라는 컨셉 때문인지 캐비넷 안의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바로 앞에 씌여져 있지 않고, 좀 더 떨어진 곳에 한꺼번에 모아서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Cabinet of Wonders
원숭이 얼굴이 하트 모양이네?
Cabinet of Wonders
가운데 있는 오브제는 버섯을 형성한 것으로, 의자들을 전시해 놓은 다른 전시실에 이와 비슷한 모양의 테이블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찾기 힘들었고 오디오 가이드마저 대여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도슨트의 설명이 실제로 꽤나 큰 도움이 되었다. 수박 겉핧기 식으로 보고 지나쳤을 여러 작품들에 대해 작가의 의도를 감안하여 진지하게 감상 할 수 있었다. 하이메 아욘 작품에 조예가 깊지 않다면 도슨트 설명이나 오디오 가이드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전반적으로 이번 전시는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도 난 유화나 사진 위주의 전시를 선호할 테지만, 종종 이렇게 다른 종류의 전시회로 외도를 해볼 계획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