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

아직 12월에 볼 영화가 몇 편 남아 있지만, 아마도 나에게 2019년 최고의 영화는 포드 v 페라리가 아닐까 싶다.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오고 극장을 빠져나온 후 한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직 영화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 있다. 정말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는 영화였다. 하긴, 멧 데이먼Matt Damon과 크리스찬 베일Christian Bale,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특히나, 크리스찬 베일의 변신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웨인 가문의 부티나는 도련님을 연기한 그 베일과 정말 같은 사람인가!

달리고 싶은 차를 만들지만 비지니스에는 소질이 없는 페라리, 비지니스는 잘하지만 그저 운송수단으로써의 차만 찍어내는 포드, 이 두회사 회장들의 라이벌리즘이 사건의 발단이다. 파산에 직면한 페라리를 인수하러 간 포드 중역들을 통해서 페라리의 회장이 포드 회장에게 멸시를 안겨 주었던 것이다. 헨리 포드가 아니라 헨리 포드 2세일 뿐이라고. 자존심이 상한 (그저) 헨리 포드 2세였던 포드의 회장은 포드에 레이싱팀을 꾸려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도전하기로 한다.

삶을 살아 가는 방식이 다른 두 남자가 있다. 열정과 실력은 남다르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못해 현실과 타협하고 사는 남자 셸비, 그리고, 열정과 실력은 출중하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못해 비루한 남자 마일스, 그들이 포드팀에 합류한다.

그들이 포드에 합류하는 방식도 그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닮아 있다. 르망 24시간 레이싱에서 우승해본 경력이 있는 셸비에게 포드의 제안이 있었고, 포드가 어떤 조직인지 뻔히 아는 셸비지만 현실에 타협하는데 익숙한 그는 비교적 쉽게 제안을 받아 들인다. 반면, 수트쟁이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포드가 참으로 못마땅한 마일스는 자신이 비루하게 사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가족들마저 비루해지려는 상황에 직면하며 어쩔 수 없이 제안을 받아 들인다. 물론, 달리고 싶은 본능이 먼저였겠지만...

팀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면 좋으련만, 포드의 수트쟁이들은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레이싱팀을 꾸리려는 목적 자체도 회사의 아이덴티티보다는 회장님의 객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다 보니, 그저 회장님 비유 어느 정도 맞춰 주는 선에서, 또는 마케팅 차원에서 지원을 해줄 뿐, 레이싱팀의 흥망성쇠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셸비와 마일스는 열정을 갈아 넣는다.

셸비와 마일스의 레이싱팀이 포드의 수트쟁이들에 의해 겪게 되는 좌절감은 엔지니어들이 회사에서 겪게 되는 감정을 대변하는 것 같아 보면서 울컥했다. 그 울분이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고, 더욱 더 열열히 셸비와 마일스를 응원하게 된다. 포드 레이싱팀을 응원하는데 포드는 망했으면 하는 이해충돌적 감정이 차들의 배기음과 뒤섞여 벅찬 감동을 선사한다.

그 와중에 페라리의 디자인은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페라리는 그저 빠르기만 한 차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