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백두산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활화산이고 특히나 1천년에 한 번씩 온다는 주기에 가까워져 있는 상태다. 평소에 백두산 폭발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꽤 기대치가 높은 상태에서 극장에 들어 갔다. 게다가, 이병헌-하정우로 이어지는 화려한 캐스팅은 이미 높은 기대치를 한 층 드높여 주었다. 그리고, 한없이 높았던 기대감 만큼이나 실망감도 클 수 밖에 없었다.

백두산이 폭발했을 경우 중국 북부와 한반도에 상당한 수준의 영향력을 줄 것이라는 것은 시뮬레이션을 통한 여러 가지 자료를 접하면서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 영향력이라는 것이 화잔재 때문에 호흡기 질환 가능성이 높아진다거나 아니면 기온이 일시적으로 몇 도 떨어지는 시나리오를 생각했지, 이로 인해 서울의 땅이 갈라지는 것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도입부의 난리는 좀 어이가 없었다. 물론, 내가 지진 전문가가 아니니 잘못 알고있는 것일 수도 있고, 영화적 상상력이라며 기꺼이 넘어가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영화 자꾸만 장면 장면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나 백두산에서 용암이 뿜어져 나오는 장면은 신과 함께 시리즈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CG팀이 같은 것일까? 이 외에도 정확히 어디서 본 장면이라고 지적하기는 힘들지만 뭔가 여러 영화들을 짬뽕해 놓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러 영화들을 연상케 한다는 뜻은 영화 속에 클리셰가 너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정석적인 장치들을 버무려 작품성 보다는 안정적으로 상업적 실패 리스크를 피하려한 모습이 다분하다. 그런데, 이런 성향이 지나치면 오히려 진부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정석적으로 가려다 보니 다음 씬이 예측 범위를 벗어나질 않는다. 내가 영화 결말 상상하는 데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데, 이런 내가 영화의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는 건 상당히 심각하다는 뜻이다. 티격태격 하다 뭔가를 계기로 둘이 친해져서 나중에는 서로 자기가 죽겠다며 눈물 쥐어 짜네는 스토리가 너무 뻔하다. 내가 알기론 아직 한번도 다뤄지지 않은 신선한 소재였는데 이런 신선한 소재를 진부하게 소모해 버린 점이 매우 아쉽다. 누군가가 이 소재로 제대로 다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미 안좋은 소리를 너무 많이 했는데,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감독이 개그 욕심을 너무 부리는 탓에 진지해야 할 장면에 쓸데없이 헛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영화의 흐름을 제대로 끊어 먹는다.

난 순수 관람객 치곤 꽤 영화를 많이 보는 관객에 속하니, 짬뽕해 놓은 것 같다며 투덜되지만, 반대로 영화를 1년에 한 두 편 보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이 영화 한 편으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풍성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잘도 구겨 넣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