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데이비드 굿하트

국내 정치는 북한과 일본 중 어느 쪽이 더 싫은가로 지지하는 정당이 갈리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들에서 통용되어 온 정치적인 상식은 노동자나 서민이 진보적인 당에 지지를 보내고 부자들이나 중산층은 보수적인 당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이 뒤집어 지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에서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의 상당수가 노동자와 서민이었다는 것, 그리고 영국에서는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가 관철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은 특히 브렉시트라는 사건을 비롯하여, 영국 유권자의 성향이 왜 변화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을 통해 저자는 유권자를 진보와 보수로 나누기 보다는 섬웨어somewhere와 애니웨어anywhere라는 구분법을 제시한다. 애니웨어는 높은 교육수준을 자랑하고 굳이 자신이 태어난 지역에 연연하지 않으며 런던 등의 대도시에 살아가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의 관심사는 세계 평화, 인종 차별 타파, 여권 신장 등이다.

반면, 섬웨어는 영국 국민의 대다수이며 지역에 기반을 두고 사는 노동자들이나 서민들을 일컫는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계층 투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노동당에게 투표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런데, 그들은 노동당의 당론과는 정 반대로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표를 던졌다. 책의 부제이기도 한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저 보수당의 프로파간다에 당한 것일까?

원인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노동당의 정책 방향성이 섬웨어들의 기대와 멀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노동당은 점점 기후 변화나 여성인권 등의 거대 담론에 몰입하여 정작 섬웨어들이 기대하는 일자리 창출이나 서민 복지 지원 등의 정책에 소홀해 왔다. 그렇다고 영국 보수당이 서민을 위한 정책에 적극적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수면 아래에서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다른 문제였다.

애니웨어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높은 교육수준 만큼이나 경쟁력에서도 앞서고 있기 때문에, 유럽이 통합되고 더 나아가 세계가 통합되면 이득이다.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섬웨어로 분류되는 사람들은 영국이 유럽에 열려 있게 됨으로 인하여 저렴한 동유럽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빼앗겨 왔다. 게다가, 유럽 연합은 지속적으로 난민 문제에 대해서 영국에게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즉, 동유럽 노동자들한테 치이는 판국에 난민들에게도 치이게 생긴 상황이다. 당연히 그들은 브렉시트 찬성에 투표했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노동당은 왜 자신들의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는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노동당이든 보수당이든 영국 정계를 애니웨어들이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노동자와 서민들이 원하는 바를 모른다. 그들을 위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옳은 일인가는 논외로 치더라도 우선 표를 얻지 못하는 정치인은 자리가 위태로울 수 밖에 없다.

전세계적으로 97%의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 산다. 즉,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섬웨어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상을 주도하는 것은 나머지 3%의 애니웨어들이다. 이러한 경향이 점점 극단에 다다르자 그 반대급부로 브렉시트 등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섬웨어들의 목소리에 귀를 귀울이지 않는다면 극우정당들은 더욱 득세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책에서 언급하는 내용들이 대부분 몇 년 전에 일어난 이벤트이고 이미 여러 경로들을 통해 접해본 사실이라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다. (적시성은 책이라는 미디어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이다.) 다만, 섬웨어와 애니웨어라는 분류 방식은 꽤나 신선했으며, 새로운 관점에서 알고 있는 내용들을 잘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과연 난 섬웨어로 분류될 지 아니면 애니웨어에 속할 지 궁금하다. 저자가 애써 부연 설명을 하였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쪽 측면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나 또한 두 타입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에 나누기가 애매하다. 난 서울이 아닌 더 나아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살아갈 자신이 있긴 한데, 그렇다고 내가 태어난 서울이라는 곳을 떠나고 싶진 않다. 난 서울을 정말 좋아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