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진주만은 서막에 불과했다!"라는 슬로건은 상당히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속았기 때문이다. 무려 18년전에 보았음에도 여전히 인상에 남아 있는 진주만의 씬들 때문이더라도 미드웨이를 보러 가야만 할 것같은 동요가 있었고, 그 본능을 따랐다.

굳이 진주만과 미드웨이를 비교하자면 난 진주만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억은 미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금 다시 진주만을 본다면 어떤 감정일 지 모르겠으나, 당시 꽤 명성 있었던 배우들이 등장했고, 케이트 베킨세일Kate Beckinsale이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알게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미드웨이에서 내가 알고 있는 배우는 루크 에반스Luke Evans 뿐이다.

미드웨이 자체로만 보면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지만 현실을 많이 반영하기 위한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줄 수 있는 수준이다. 태평양 전쟁에 대한 역사적 식견이 짧은 나로서는 이 영화를 토대로 그 당시 미국이 얼마나 아찔한 상황까지 수세에 몰렸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심지어 당시 일본의 전투기들이 미국의 전투기보다 훨씬 훌륭한 수준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는데, 정말 일본이 전세계를 집어 삼키려 준비를 많이 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비해서 미군 전투기들의 열악함과 불량품 많은 미국산 어뢰로 인해서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정말 어처구니 없이 위험한 전술을 사용해야 했는데, 일본의 함대를 찾으면 빗발치는 대공포를 피하며 급강하하여 최대한 가까운 곳에 폭탄을 투하하고 다시 급상승한다. 정말 아찔하다. 이 기술을 사용하는 조종사들이나 이걸 시켜야 하는 지휘관들이나 참...

단순히, 전쟁 중 석유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확보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이 미국에 무모한 도전을 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생각보다 일본은 주도면밀한 계산을 했고, 생산량 측면에서 압도적인 미국을 속전속결로 치고 들어가면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에 공격을 감행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오판이었지만, 확실히 일본은 조심해야 하는 나라가 틀림없다.

다소 미국뽕이 들어간 영화라 좀 불편한 감은 있었고, 그래서 누구에게 권해줄 만한 영화는 아니다. 괜히 진주만을 생각하고 기대치가 높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굳이 보겠다면 기대치를 좀 낮추고 극장에 들어설 것을 권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