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판단력』 존 코츠

금융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시장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답은 아마도 금리일 것이다. 즉, FED가 금융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다소 엉뚱한 답을 내놓은 사람이 있다. 바로 『리스크 판단력The Hour between Dog and Wolf』의 저자 존 코츠Jone Coates이다.

존 코츠는 금융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테스토스테론을 지목했다. 그렇다. 흔히들 남성 호르몬이라고 말하는 그 테스토스테론. 존 코츠는 신경 과학자였다가 월스트리트로 진출해 트레이더로 변신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고 아마도 이러한 이력을 생각하면 엉뚱하게 느껴졌던 답에 무게가 실리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테스토스테론이 금융 시장을 지배한다는 논리가 다소 엉뚱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를 설명하는 과정은 꽤 설득력이 있다. 우선, 금융 시장에서 많은 거래량을 유발하는 것은 데이트레이딩이나 스켈핑 같은 단기 거래이다. 시장 본래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지만 시장에 실질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단기 트레이더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성비는 유독 남성이 압도적이다. 9.9:0.1 정도가 아닐까 한다.

남성으로 가득찬 트레이더들의 세계에서 각각의 트레이더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테스토스테론이 야기한 리스크 테이킹 성향이다.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높을 수록 자신감과 리스크 테이킹 성향이 올라간다. 너무 올라가서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변질되면 무모한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성향은 시장의 움직임과 유사하다.

주로 가을에 큰 폭락이 있는 이유에 관해서도 남자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가을에 낮아지기 시작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남성 트레이더들이 가을에 센티해져서 금융시장에서 위험자산을 피한다는 주장은 너무 나갔다 싶으면서도 그럴 듯하고 납득이 간다.

테스토스테론이 리스크 테이킹 성향을 자극한다면 그 반대의 역할을 하는 호르몬도 있다. 바로 코르티솔이다. 금융 시장에서 트레이더가 잦은 실패를 맛보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뇌를 지배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트레이더는 학습된 무력감을 겪으며 비이성적 비관주의에 빠져 들게 되며 분명 기회가 있음에도 쉽사리 리스크 테이킹을 주저 하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대부분의 트레이더들이 이러한 상태에 있으면 아무리 FED가 금리를 내려도 금융시장을 자극할 수 없다. 그들이 이 상태에서 벗어 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만성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도 제시한다. 우선, 만성 스트레스 상태인 경우 이국적인 곳으로의 휴가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요인이 된다. 즉, 낯선 환경에 대한 도전은 자신의 상태가 괜찮을 때로 미룰 필요가 있다. 운동 또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시적으로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긴 하지만, 이것은 그저 진통제 처방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가장 익숙한 환경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사실, 저자가 독자에게 좀 더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이성과 감성을 별개로 판단해서는 안되고, 또한 뇌와 몸을 별개로 구분해서는 안된다는 점일 것이다. 즉, 외부의 반응이 호르몬이나 신경을 자극하고 이러한 자극이 두뇌의 판단력에 영향을 미치니, 너무 흥분한 상태가 되거나 반대로 너무 우울한 상태에 빠지지 않게 평정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우리를 흥분시키고 우울증에 빠뜨리는 것은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밸런스 유지에 실패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저자는 이들이 제 역할을 하도록 평소에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평소에 찬물 세수나 찬물 목욕 등을 하여 부교감 신경이 자극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훈련시킨다던지, 심호흡이나 명상 등으로 쉽게 흥분하는 성향을 완화시킬 수 있다.

트레이딩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저자가 가상의 트레이딩 룸에서 가상의 캐릭터들이 흥분 상태에 빠지거나 잦은 손실로 우울한 상태에 빠져 리스크 테이킹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묘사한 상황극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바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심신을 안정시키는 방법을 제안했다면, 나같은 경우 시스템 트레이딩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개입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기에 저자의 해결책은 꽤 유용하다고 느껴진다. 다만, 요즘 금융 시장은 테스토스테론보다는 머신끼리 주고 받는 상황이라 시장의 성향이 좀 변했다.

왜 여성 트레이더는 별로 없을까라는 궁금증을 늘 가지고 있었고, 여성은 리스크 테이킹을 주저한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었는데, 저자는 이 질문에도 답해주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여성들도 리스크 테이킹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다만, 여성들은 단기적 트레이딩 보다는 좀 더 롱텀 트레이딩을 선호할 뿐이라고 한다. 한국은 어떨 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경우 프롭트레이딩이 남성들의 세계일 지 몰라도 자산 운용사같은 곳은 여성 트레이더의 비중이 꽤 높다고 한다. 즉, 단기 트레이딩은 사냥 본능과 비슷해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는 남성들이 선호하고,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장기 투자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이가 크지는 않는 듯하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