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로트렉전 @한가람미술관

툴루즈 로트렉전을 관람하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방문했다. 티켓은 이미 예매해 놓은 지가 꽤 되었으나 주말 보다는 좀 한산한 시간에 관람하고픈 생각에 연휴 전이라고 조기 퇴근하고 방문한 것인데,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방학인 학생들이 대거 관람한 것인지 관람객이 꽤 많았다.

도슨트 설명 보다는 앱을 통해서 오디오가이드를 미리 구입하여 이용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주로 사용하던 앱에 오디오가이드가 올라오지 않아 방문한 곳에서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할까 하다가, 도슨트 설명이 20분 후에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슨트 설명을 듣기로 하였다.

전시실 앞쪽 작품들 대부분이 드로잉이라 따분해 하면서 관람을 하고 있다가 도슨트 설명이 시작되는 3시에 맞춰서 전시실 입구로 돌아 갔는데 엄청난 인파에 놀라고 말았다. 도슨트 설명을 들으러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슨트가 남자였다. 작품 설명에 남녀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 도슨트를 처음 보아서... 오디오가이드에 의존하고 있는 동안 트렌드가 바뀌었나보다.

아마도 이번 전시를 도슨트 없이 관람했다면 툴루즈 로트렉에 대해 과소평가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도슨트의 설명은 관람객들에게 작품들을 좀 더 빛나 보이게 해주었다. 게다가 이번에 우리에게 설명을 해주던 도슨트는 내가 만나 보았던 다른 도슨트들의 평균을 훌쩍 넘는 수준의 능력을 발휘했다. 마치 50분동안 툴루즈 로트렉에 대한 강의를 듣는 듯했다.

이제까지 수십명의 도슨트 설명을 들어왔고, 대부분은 알바거나 전시실 관계자들이 시간을 할애하여 설명을 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들 중에는 큐레이터가 직접 어떤 취지로 전시를 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열의에 가득찬 뜨거운 진행을 해주던 도슨트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도슨트는 지나치게 진지해지지도 않았고, 관람객이 많다고 당황하지도 않았으며, 종종 지나치지 않은 위트를 섞어 가며 관람객들을 리드했다. 준비를 정말 철저히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를 마치며 자신을 프리랜서 도슨트라고 소개했는데, 이제는 국내에서도 도슨트가 그저 덧붙여진 업무가 아니라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람을 끝낸 직후, 인스타그램에 지루한 전시를 도슨트가 살렸다는 취지의 포스팅을 했더니 Jina의 댓글을 통해서 도슨트의 이름이 김찬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설명 끝날 때 말해 줬는데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마도 이 분은 얼마 안가 매우 힙한 셀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날 때 사인이라도 받아 둘 걸 그랬나? ㅋㅋㅋ

도슨트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그런데, 작품 이야기로 돌아 가려면 다시 도슨트 이야기를 해야 한다. 도슨트에 따르면 꽤 오래되었던 뮤지컬 영화 물랑루즈가 툴루즈 로트렉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툴루즈의 뮤즈이자 절친이라고 할 수 있는 제인 아브릴Jane Avril를 다룬 작품이 이번 전시에도 여러 점 걸려 있는데, 그녀가 바로 물랑 루즈에서 니콜 키드먼Nicole Kidman이 연기한 사틴Satine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번 전시는 거의 물랑루즈를 프로모션의 핵심으로 삼고 있었고, 실제로 툴루즈 로트렉의 삶이 몽마르트르 언덕과 물랑루즈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보니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닌 셈이다.

도슨트는 로트렉을 굳이 알폰스 무하와 비교하면서, 알폰스 무하가 당대 최고의 거장 중 하나였다면, 로트렉은 시대를 뛰어 넘는 거장이라면서, 당시에 사물을 예쁘게 그리는 작가는 많았지만, 로트렉은 그것을 넘어 서서 매우 간단한 터치만으로 피사체의 캐릭터성을 살리는 능력이 있었고, 이런 특성은 모던 아트의 지표를 제시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고 한다. 위대한 작가라면 이렇게 예술이 나아가야할 미래를 제시해주어야 한다며 로트렉을 찬양했다. 아마도 브뤼앙Aristide Bruant의 작품이 가장 적절한 예가 아닌가 싶다. 챙이 큰 모자, 검은 망토, 그리고 빨간 머플러를 통해 그의 캐릭터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고, 그 후에 브뤼앙은 이 포스터의 도움으로 인기를 얻었다. 물론, 제인 아브릴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으로 이번 전시는 작품들의 구성만으로만 놓고 보자면 그다지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릴적 작품임에도 작가의 천재성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도슨트의 찬양에도 불구하고 드로잉 작품들이 나같은 비전공자들에게는 낙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 이런 드로잉 작품들이 2/3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이라 지루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도슨트가 살린 전시였다. 과연 도슨트의 설명없이 이 전시를 관람한다면 만족감을 얻어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by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