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8 후면 유리 사설 수리
지난 수요일 영어 스터디를 마칠 무렵에 테이블에서 바닥으로 폰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바닥이 대리석이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떨어진 순간의 소리가 예사롭지는 않았지만, 이 폰을 써온 약 2년 동안 다섯 번 이상은 떨어뜨렸고, 그때마다 모서리가 찍히는 사고에 그쳐서 이번에는 어느쪽 모서리가 찍혔으려나 하는 푸념 정도만 했다. 그런데... 뒷면 유리가 깨져 있는 것이 아닌가!
깨어진 후면 유리를 보는 순간 드는 생각은 아이폰11로 가야 하나였다. 아이폰8을 사용한지 약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나의 평균적인 스마트폰 교체 주기 상 새로운 폰을 사야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이다. 애플 사이트를 들어가서 아이폰11 디자인을 보는 순간 내가 왜 아이폰11을 사지 않고 아이폰12를 기다리고 있는 지가 생각났다. 노치 디자인이 싫어서였다.
그 후에는 어떻게 이 상황을 타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후면 유리가 깨어진 순간에만 해도 새로운 아이폰을 살 생각에 살짝 들뜨는 앱등이스러운 감정이었는데 현실을 자각한 것이다. 그저 수리비만 통장에서 빠져나갈 상황이라는 것을...
집에서 가져와 깨어진 뒷면을 보니 나름 예술적으로 깨어져 있다. 그냥 가지고 다녀도 괜찮을 정도로 깨어진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다만, 그렇게 가지고 다니기는 어려운 것이 집중적으로 깨어진 부분에서 옆으로 생긴 크랙은 단차가 생겨서 무심코 쓰다가 손을 베일 염려가 있었다. 그렇다고, 평생 케이스 없이 생폰으로 쓰던 습관을 버리면서 케이스로 덮고 다니기도 싫었다.
애플의 공식적인 경로로 수리를 하는 경우를 감안해 보니 무상 수리기 기간이 지난 상태라 수리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 수리비라기 보다는 유상 리퍼 단계를 거쳐야 한다. 좀 어이가 없는 것이 액정이 나가면 액정만 교체하면 되는데 뒷면 유리가 깨진 것은 수리가 불가하여 리퍼로 진행이 된다고 한다. 거의 새로 사는 가격에 가까워 지니 공식 경로를 통하는 방안은 포기. 혹시나, 애플케어플러스에 가입했었어야 했나 알아 보니 어처구니가 없는 가격이 제시되어 있었다. 애플케어플러스는 애초부터 답이 아니었다.
그 후에 생각한 것이 사설수리업체였다. 애플의 이런 사악한 사후 지원 서비스로 인하여 무수히 많은 사설수리업체들이 번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아본 결과 사설수리업체에서도 깨어진 유리만 교체해주는 곳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 하우징 전체를 교체하는 방식을 거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유리만 교체하는 가격은 10만원 미만이고 하우징 교체는 10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비용이 든다. 그래서, 그냥 하우징 교체를 선택해 버렸다. 유리만 교체해준다는 곳을 찾기도 힘들었고, 그런 곳이 얼마 없다는 것은 그것이 상당히 고난이도의 작업이며 실패할 확률도 높다는 것을 뜻했다. 비용을 무리해서 줄이는 것보다는 폰을 온전히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사설수리로 마음을 먹은 후에는 어느 업체에 맡길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남아 있었다. 내가 선택한 곳은 판교역 근처에 위치한 앱픽스코리아라는 업체였다. 우선 점심을 빨리 먹고 맡긴 후에 퇴근할 때 들러서 가져가는 시나리오를 생각하여 판교역 근처를 선택한 것이었고, 이 업체의 평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으며 그리 짧지 않은 업력을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중에 발견한 것이지만, 회사에서 더 가까운 곳에 다른 수리업체도 있었다. 내가 찾지 못했을 뿐... 너무 급하게 검색을 하다 보니 검색어 질의에 미흡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날 출근을 해서 전화를 해보니 하루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우징 재고를 갖춰 놓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주문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위의 시나리오를 하루 지나서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후면이 깨어진 상태로 하루를 더 보내는 것이 그리 불안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맡기고 나서는 뭔가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상태가 되어서, 현대인들이 폰과 떨어지면 분리불안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개나 고양이만 분리불안이 있는 것이 아니다.
퇴근길에 업체에 다시 방문해보니 폰은 잘 수리되어 있었다. 하우징을 교체한다는 것은 스마트폰을 분해하여 새로운 하우징에 내부 부품들을 모두 옮겨 담고 연결한 후 액정으로 덮는 과정을 거친다. 참고로 앱픽스코리아에서 제시한 아이폰8 하우징 교체 비용은 현금으로 할 경우 13만원을 요구하였다. 이왕 이렇게 된거 배터리 교체를 같이 하면 품이 좀 덜 들텐데 얼마에 가능하냐고 물어 보니 배터리 교체 비용은 4만5천원인데 만원 빼주겠다고 해서 그것까지 함께 진행하였다. 하우징 교체와 배터리 교체까지 총 16만 5천원의 비용이 들었다. 이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지는 잘 모르겠다. 2월에는 근검절약하며 살아야 할 듯하다.
하우징과 배터리의 애플 정품 여부는 의심스럽다. 하우징 교체 후 그립감이 살짝 차이가 난다. 미세하게 좌우폭이 넓어 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조명 각도에 따라 애플 로고가 번져 보이는 현상이 있다. 또한, 로즈골드 색상에서 핑크빛이 좀 더 강하게 도는 것같다. 하지만, 세 가지 의구심 모두 확실하지는 않다. 그립감도 아주 미세해서 확신하기는 힘들고 애플 로고 번짐 또한 하우징 교체 전에 애플 로고를 그렇게 유심히 보지 않았던 것같고... 배터리는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우려가 되긴 하지만, 사설에서 배터리 교체하는 것은 꽤나 일반적인 상황이라... 애초부터 정품이냐고 물어 보지도 않았다. 판매할 생각이 없으니 그저 비슷하다면 되었다. 완충해도 89%였던 배터리는 이제 완충시 100%가 뜬다. 확실히 배터리 소진 속도가 줄어 들었다.
액정에 보호필름을 서비스로 붙여 주었는데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떼어 달라고 했다. 케이스도 안씌우고 쓰는데 필름이 왠말인가! 난 이런거 붙이는 걸 정말 병적으로 싫어 한다.
언젠가 집을 장만하면 바닥을 빠까뻔쩍한 폴리싱 타일로 깔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