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 앤드류 로

효율적 시장가설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 들여진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항상 알파를 찾으려는 이들은 있어 왔고, 그들 중 일부는 성공을 했기에, 이제는 시장이 단기적으로 효율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효율적 시장가설을 반박하는 책의 등장은 그리 신선하지는 않다.

『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은 제목만 보면 뭔가 금융시장과 진화론을 접목시켜서 뭔가 반짝이는 발상을 책으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효율적 시장가설에 대한 반론에 힘을 싣는 책이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이유로 이 책도 그리 신선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미 시장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아는데, 쉐도우 복싱을 하는 느낌이랄까.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2020년이고, 원서가 출판된 것도 2017년이라 번역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핑계도 그리 어울리지는 않는다.

내가 행동경제학이나 경제심리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책들 중 가장 먼저 접한 것은 10여년 전에 읽었던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이었다. 그리고, 몇 권을 더 읽었으나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는 책은 없었고, 『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행동경제학 관련 서적을 처음 접하는 이가 『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을 읽겠다 하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이미 다른 유사 서적을 읽었던 독자에게는 이 책을 권하기가 좀 망설여 진다.

주류 경제학에서 경제 주체들이 완벽한 수준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을 하는 것은 실제로 경제 주체들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시작을 해야 여러 가지 가지를 쳐서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대체적으로 경제 주체들이 이성적이니 이러한 전제가 그리 틀리지는 않았다는 것이고, 행동경제학 쪽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생각보다 더 비이성적이라 주류 경제학 모델이 전제부터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금융시장으로 간 진화론』이 다른 행동경제학/경제심리학 책들과 차별화를 두고자 하는 바를 꼽자면 바로 "적응적 시장가설"이라는 개념을 강력하게 드라이브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제목에 등장한 진화론이라는 단어와도 연관이 되는데, 저자인 앤드류 로 교수는 경제 주체들이 경제 위기때마다 이성적인 판단으로 시장에 참여하기 보다는 그때 그때 본능적으로 적응해 나갔고, 그 결과물이 바로 시장이라고 주장한다.

적응적 시장가설이라는 단어는 신선하지만 그 개념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효율적 시장가설이 주류로 평가되고 있던 시절에도, 이러한 주장에 콧방귀를 끼며 시장의 비효율적인 측면을 찾아 수익을 얻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은 존재했고, 그들 중 일부는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플레이어들에 의해서 시장은 점점 더 효율적으로 변해갔고, 그 효율성이 극에 달하는 순간, 즉, 시장의 쏠림이 극에 달하게 되면 오히려 시장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다시 비효율적인 상태가 되곤 하였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