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의 함정』 데이비드 롭슨

꽤 오랫동안 궁금했던 점이 있었다. 왜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엉뚱한 미신을 믿거나 종교에 빠져드는 것일까? 특히, 진화론을 공부할 기회도 있고 능력도 있는 사람들일텐데, 형이상학적인 측면에 가치를 부여하는 일부 이공계열의 전공자들의 경향은 유물론자인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능의 함정The Intelligence Trap』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흔히 인간의 지능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로 IQ 테스트가 있다. 『지능의 함정』은 이 IQ 테스트의 기원부터 알려준다. 처음에 IQ테스트를 만든 것은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였다. 프랑스 정부가 의무교육을 실시함에 따라 일부 아이들이 정상적인 교육 수준을 따라오기 힘들었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 고민하기 전에, 미성숙한 아이들을 일반적인 아이들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 진 테스트가 IQ테스트의 기원이었다. 즉, IQ테스트의 최초 목적은 똑똑한 아이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학습 부진아들을 찾아 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테스트를 최초 목적으로부터 확장하여 인간의 지능을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또다른 심리학자 루이스 터먼Lewis Terman이 있었다. 그는 이 테스트를 개선하여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테스트할 수 있도록 테스트를 업그레이드하여 오늘날의 IQ테스트와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 놓았고, IQ테스트는 전세계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오늘날 미국 SAT나 GRE 등도 모두 IQ테스트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문제는 IQ가 높은 사람들의 인생이 IQ만큼 훌륭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까지는 IQ와의 상관관계가 뚜렷한데, 그 이후의 인생은 IQ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 말은 인간의 모든 지능을 IQ로 측정할 수 있다는 터먼의 일반 지능 이론에 허점이 있다는 뜻이고, IQ는 인간의 지능 중 일부만이 측정된다는 뜻이다.

IQ 테스트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들이 등장했으나, 이 대안들이 IQ테스트를 대체할 만큼 신뢰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다 코넬 대학의 심리학자인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에 의해서 등장한 새로운 이론이 주목받게 된다. 이름하야 '성공적 지능의 삼위 일체 이론Triarchic Theory of Successful Intelligence'이다.

'성공적 지능의 삼위 일체 이론'은 인간의 지능을 크게 세 가지, 분석지능, 창의지능, 현실지능으로 분류한다. 분석지능은 IQ에 해당한다. 그리고 스턴버그에 따르면 창의지능은 발명하고 상상하고 추측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창의지능도 개발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글쓰기 연습을 하거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정을 해보는 등의 수업으로 증진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지능은 삶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불분명한 문제들을 최대한 실용적인 방법으로 극복하는 능력으로, 내 장단점을 파악하는 메타인지 능력과 더불어 감정 지능/사회 지능 등을 포괄한다. 현실지능이 가르치기 가장 힘들고 측정하기도 어려운 지능이다.

안타깝게도 스턴버그의 이론은 터먼이 주도한 IQ테스트만큼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우선 IQ테스트같이 측정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다소 두루뭉실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IQ가 인간의 모든 지능을 측정할 수 있다는 인식에 스크래치를 준 것은 틀림없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능의 함정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지능의 함정에 대표적인 예로 등장하는 것은 『셜록 홈즈』의 저자인 코난 도일이다. 코난 도일의 지능은 최고 수준임에도 그는 심령술을 믿었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당시에는 심령술이 대유행이긴 했지만, 왜 최고 수준의 지능을 가진 코난 도일이 심령술에 빠져들었을까?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합리성Rationality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특히, 인식적 합리성이 중요하다.

우선 합리성의 정의가 필요한데, 우리가 가진 자원으로 목표 달성에 필요한 최적의 결정을 내리고, 증거와 논리와 건전한 추론에 기초해 믿음을 형성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특히, 인식적 합리성Epistemic Rationality는 "내 믿음이 세계의 실제 구조와 얼마나 잘 맞아 떨어지는가"에 관한 것이다. 즉, 심령술에 빠져든 코난 도일은 인식적 합리성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IQ테스트의 일종인 SAT테스트와 합리성 테스트의 상관관계를 조사해보면 상관관계가 상당히 낮게 나온다는 점이다. 즉, IQ가 높다고 해서 합리적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경우의 경제적 성향에서 특이한 케이스가 관찰되는 경우가 많은데, IQ가 높은 사람은 대체적으로 좋은 직장에 다니게 되고 그래서 돈을 잘 벌지만 자산을 형성하는 쪽에서는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투자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IQ가 높은 사람은 인지 편향이 생길 경우 똑똑한 두뇌가 인지 편향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너무나 똑똑한 나머지 여러 가지 증거 자료를 수집하여 논리적으로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지능의 함정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여러 가지 편향을 소개하고 이러한 편향에 빠지지 않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훈련 방법이라든지 마음 가짐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러한 내용은 다른 심리학 서적 등에서 많이 읽어본 내용들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이 책을 예전에 읽었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당히 익숙한 내용이 많았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