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5년전에 『삼체』라는 SF소설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원래 3부작인데 당시에 1부만 번역이 되어 국내에 출간된 상태라 후속작이 번역되어 출간되기를 기다렸고, 그 후에 출간이 되긴 했는데, 우선 순위에 밀려 오랫동안 "읽을 책" 리스트에 올려 놓기만 하다가 이제서야 2부를 읽게 된 것이다.

2부의 제목은 『삼체 2부 암흑의 숲』이다. 1부의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자면, 외계 문명에게 지구의 존재를 알리고자 발사된 전파를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 인근에 있던 문명이 인지하게 되고, 후에 "삼체"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 문명이 400년 후에 지구에 도착하여 지구를 정복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그리고 2부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난 400년이라는 설정이 참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만년이라고 하면 그냥 별 생각없이 그러려니 할 것이고 100년 정도라고 하면 엄청난 공포에 휩쌓여 난장판이 될텐데, 400년이라는 세월은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희망이 있다면, 인류 문명의 기술 발달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했던 전례를 보아 400년 후에는 지구를 정복하러 나타날 "삼체" 문명에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고, 절망적인 것은 "삼체" 문명이 미리 지구에 "지자"라는 것을 보내 은밀하고도 집요하게 지구 문명의 물리학 기술 발전을 방해하고 저지한다는 것이다.

"지자"라는 것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전방위적으로 감시하고 이를 "삼체" 문명 쪽으로 송신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인류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국제적인 기구 차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데, 그것이 바로 "면벽자" 프로젝트이다. 선발 기준을 알 수 없지만, 네 명의 "면벽자"들이 선출되었고, 이들은 국제적인 기구에게 엄청난 수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즉, "지자"들에 의해서 팀 플레이가 저지된 인류가 혼자의 힘으로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여 "삼체" 문명에 대항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할 사람 네 명을 뽑은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삼체" 문명은 "면벽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파벽자"로 불리우는 사람을 선발하여 그들의 생각을 읽게 한다.

여러 가지 물리학적 지식이 없더라도, 이러한 아이디어는 꽤나 흥미롭다. 그리고, 이 면벅자들이 떠올리는 아이디어도 정말 기상천외하여 혀를 내두른다. SF소설의 본질적인 목적이 미래에 대한 상상인데, 이 상상력 만큼은 정말 훌륭하다. 마치 미래판 무협지를 읽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영미권의 SF소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딱히 명성도 없는데 네 명의 "면벽자"가 중 한 사람이 된 중국인 출신 뤄지의 행보는 마치 내가 "면벽자"가 된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상상력을 불러 일으킨다. 인류의 예상을 초월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면벽자"의 요청에는 이유를 묻거나 제한을 할 수 없고, 그래서 거의 제약없이 지출을 할 수 있다. 그것이 공적인지 사적인지는 "면벽자" 본인만 알 수 있다.

뤄지는 다른 "면벽자"들과는 다르게 예산을 사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를 알 수 없는 경치 좋은 마을에 거처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한 후, 과거에 잠시 스쳐 지나갔던 여인의 인상착의를 알려 주며 찾아 달라고 요청을 한다. 그리고, 그 거처에서 그 여인과 5년간 꽁냥꽁냥 자식 낳고 잘 살아간다. 보다 못한 국제 기구가 그 여인과 딸을 데려가서 동면상태로 만든 후 400년 후에 깨워 주겠다며 빨리 지구를 구할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라고 압박을 한 후에야 아이디어를 짜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오직 이 뤄지의 아이디어만이 성공한다. 역시 되는 놈은 뭘 해도 되는 시나리오랄까.

삼체 시리즈에 전반에 흐르는 전제는 의미심장하다. 우주는 한없이 넓어 보이지만 우주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여러 문명이 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경쟁해야 하며, 서로를 발견한 이상,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없고 그들의 발전 속도는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에, 게임 이론 측면에서 공격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제 고인이 된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 있다. 혹시 있을 외계 문명을 향해 전파를 발사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삼체 시리즈를 읽기 전에는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확실히 이해할 것 같다.

3부가 남아 있는데, 과연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 지 모르겠다. 2부에서 어느 정도 완결이 된 느낌이라. 조만간 읽어 봐야 겠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