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풀어낸 수학자』 그레고리 주커만

가치투자를 하는 주식투자자들 사이에서 워렌 버핏은 신으로 추앙받고 있고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의 신전으로 여겨진다. 퀀트나 시스템 트레이딩을 하는 이들에게는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가 신이고 르네상스 테크놀로지Renaissance Technologies가 그의 신전이다. 『시장을 풀어낸 수학자』가 출간되며 두터운 구름속에 가려져 있던 그의 신전이 살짝 실루엣을 드러냈다.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었다.

책을 읽은 후, 읽기 전에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제임스 사이먼스와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식 중 상당 부분이 잘못된 사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언론에 잘 드러나지 않는 그와 그의 신전덕에 난 그가 뛰어난 수학자지만 상당히 내성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해왔다. 일반적으로 뛰어난 수학자들은 그러하니... 하지만, 르네상스 테크놀로지가 지금까지 위대한 조직으로 남아 있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점은 제임스 사이먼스가 특출난 수학자임과 동시에 사교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며, 그래서 뛰어난 인재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제임스 사이먼스는 정말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퀀트 트레이딩이 상당히 보편화된 분야지만, 제임스 사이먼스가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전신인 모네메트릭스를 설립하던 시기에는 수학자가 신성한(?) 수학적 발견을 뒤로하고 고작(?) 트레이딩 따위에 신경을 쓰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받아 들이기 힘든 결정이었다.

제임스 사이먼스가 위대한 점 중 또다른 하나는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거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했다는 점 뿐만이 아니라, 회사의 기밀을 최대한 모든 직원들에게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찾아낸 알파를 얼마나 잘 숨기느냐가 수익에 직결되는 퀀트 회사에서 이러한 문화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대범한 결정이다. 아마 지금도 그런 문화를 가지고 있는 퀀트 회사는 드물 것이다.

물론, 이런 문화로 인하여 직원이 이탈하여 경쟁사에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전략을 가져다 주는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대범한 결정덕에 우수한 인재들간에 어머어마한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 졌고, 그 결과가 바로 메달리온 펀드의 어마어마한 누적 수익률일 것이다.

책에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메달리온 펀드가 어떠한 전략을 사용하는지 자세한 설명을 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방법론은 그럭저럭 묘사해 놓았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는 몇 년 전부터 트렌드가 되어 버린 머신 러닝과 같은 아이디어를 꽤나 이른 시기부터 적용해 왔다. 인간의 아이디어를 코드로 만들어서 기계적으로 트레이딩하는 전략을 넘어 서서, 기계 스스로가 아이디어를 발견해 내고 트레이딩하게 한다는 뜻이다. 이런 블랙박스 모델은 초반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손실에 대비하지 못하여 비난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시장수익률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메달리온 펀드의 어마어마한 누적 수익률 덕분에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직원들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고, 특히 창립 멤버나 초기 멤버들의 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이 부를 정치적인 후원에 사용함으로써, 미국과 세상에 특이점을 만들어낸 사람 중 하나가 로버트 머서Robert Mercer였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수학자와 컴퓨터 공학자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답게, 제임스 사이먼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민주당 지지자였던 반면, 머서는 공화당을 지지했고, 그의 딸인 레베카 머서Rebekah Mercer와 함께 엄청난 후원금을 전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 당선시키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 심지어 브렉시트도 그의 작품이라 할 정도이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가 베일에 가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이 전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셈이다.

제임스 사이먼스 본인의 저서가 아니지만 항상 동경해왔던 곳에 대한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져서 어마어마한 책을 읽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우수한 인재들 틈바구니 속에서 금융 시장에서 트레이딩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 심지어 그들도 항상 시장을 힘겨워 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