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
블랙위도우를 시작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4가 시작되었지만, 블랙위도우는 연결고리의 성격이 강했고, 실질적으로 대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은 이번에 개봉한 이터널스가 맡게 되었기에, MCU 프랜차이즈의 팬이라면 꼭 보고 넘어가야 하는 영화가 이터널스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극장을 찾았다.

그리스신을 모티브로한 이터널스들은 인간들에 비하면 신의 경지에 이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터널스 위에 있는 셀레스트리얼에 비하면 매우 미약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셀레스트리얼인 아리셈이 지구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 컨트롤을 목적으로 보냈던 데비안트들이 스스로 포식자 역할을 하면서 통제에 따르지 않자, 인류를 데비안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터널스를 지구로 보낸다.
언뜻 보면 영화는 이터널스와 데비안츠의 싸움, 그리고 데비안츠로부터의 인류 보호라는 단순한 선악구조를 기반으로 진행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단순한 영화는 아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언급해도 스포일러가 되니 영화 리뷰에 스포일러를 지양하는 입장에서 쓸 말이 많지 않다. 전 우주적인 관점에서 인류는 보호되어야 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도만 언급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관객뿐만 아니라 이터널스들 또한 고민을 하게 되고, 그 고민의 흔적들이 영화를 이루게 된다.
SF 장르를 좋아하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에 열광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보면 꽤 봐줄만한 영화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다지 주목할만한 영화는 아니다. 이터널스의 능력은 마블 코믹스 작품이지만 MCU에는 포함되지 못한 엑스맨 시리즈의 능력과 유사한 느낌이다. 물론, 인간의 돌연변이인 엑스맨 보다는 처음부터 셀레스티리얼에 의해 정교하게 설계된 이터널스가 더 위력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기술들의 표현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양한 캐릭터 각각에 대한 스토리를 부여하려다 보니 영화가 좀 늘어지는 경향도 있다. 심지어 이러한 노력이 괜찮은 결과를 얻었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게다가, 난 배우들 중 왕좌의 게임에 등장했던 리차드 매든Richard Madden과 키트 해링턴Kit Harington 때문에 머릿속에서 유니버스가 섞이는 느낌을 받았다. 왜 롭 스타크와 존 스노우가 삼각관계를... ㅋㅋㅋ
대체적으로 마블 코믹스 영웅들의 첫번째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던 것 같다. 캡틴 아메리카도 그랬고 헐크도 그랬으며 심지어 아이언맨도 1편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다음 이터널스 편은 엄청나게 재밌을 지도 모른다는 뜻이 된다.
워낙 화려하게 마무리했던 어벤져스 엔드 게임 덕분에 관객의 기대치는 올라가 있고, 이것을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마블 코믹스 입장에서도 참 어려운 도전인 셈이다. 다행인 점은 걱정은 그들의 몫이고 관객은 그저 즐기면 된다는 점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