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닉 레인

약 7년전, 『산소』를 통해 닉 레인Nick Lane의 저서를 처음 접한 이후로 국내에 출간된 모든 닉 레인의 책을 읽어 나가고 있다. 얼마 전에 신간 『트랜스포머』가 한국어 버전으로도 출간되어 이렇게 읽어 보게 되었다.
닉 레인의 책을 시작할 때는 늘 버거움이 있었고,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는 그 버거움 만큼이나 뿌듯함이 느껴졌는데, 이번 『트랜스포머』는 뿌듯함 보다는 좌절감이 좀 더 크게 다가왔다. 『산소』를 통해 무기물의 세계에서 유기물의 세계로 넘어 가는 과정을 거시적으로 (때론 미시적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이후의 책들은 그 빈틈을 촘촘이 메꿔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 『트랜스포머』도 마찬가지다. 점점 더 심오해진다.
닉 레인은 독자들이 자신의 페이스대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고 있는 것같다. 다시 말하자면, 난 닉 레인이 기대한 페이스로 생화학 지식을 업그레이드 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이것이 뿌듯함 대신 느꼈던 좌절감의 본질이다.
좌절감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업데이트한 지식을 토대로 기록해 보려고 한다. 우선, 『트랜스포머』의 핵심은 TCA회로, 시트르산 회로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는 크렙스 회로Krebs Cycle에 대한 이야기다. 역자가 크레브스라고 표기해 놓았던데 검색을 해보면 대체로 국내에서는 "크렙스"라고 부르는 듯하여 이번 글에서도 크렙스로 쓰려고 한다.
크렙스 회로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연소과정, 특히 포도당이 피루브산이 되어 ATP를 생성하고 부산물로 CO2와 물이 되는 과정을 뜻한다. 책에는 자세하게 여러 가지 기호를 사용하여 표현해 놓았지만 그 자세함이 좌절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생화학과 학생들이나 의학과 학생들은 이 회로를 달달 외워야 한다던데, 비전공자인 나에게는 이 회로를 힘겹게 이해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은 뿌듯함 뿐이라 잠정적으로 포기했다. 문제는 이를 포기함으로써 『트랜스포머』의 상당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크렙스 회로 이후에 비전문가 입장에서 좀 더 명확하게 인지되었던 부분 중 하나가 암에 관한 이야기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 중 하나가 바르부르크 효과라는 것이다. 바르부르크 효과란 암세포가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흡보다 발효를 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몸속에 암세포가 있으면 몸에서 발효가 일어나는 것인가? 발효라는 말에 암세포가 더 섬뜩하게 느껴진다.
더 나아가 닉 레인의 노화에 대한 견해도 들을 수 있었다. 노화를 늦출 수는 있지만 항간에 퍼지고 있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주장, 즉 안티-에이징이나 영생에 대한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닉 레인의 입장이다. 알게 모르게 데이비드 싱클레어David A. Sinclair를 저격하는 듯한 느낌이라 뭔가 흥미진진했다. 닉 레인은 노화를 늦추는 핵심은 호흡이며 꾸준히 운동과 깊은 호흡으로 미토콘드리아를 늘 엑티브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호흡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건 귀멸의 칼날을 볼 때 빼곤 처음인 것같다.
역량 부족으로 책에 담겨 있는 상당한 양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해서 많이 아쉽다. 어떻게든 좀 더 이해하려고 두 번이나 읽었음에도 그러하다. 그나마 몇 가지 지식을 업데이트 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 겠다. 언젠가 크렙스 회로를 이해할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