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해방』 피터 아티아, 빌 기퍼드
평소에도 건강 관련 서적을 자주 읽어 온 터라, 이번에도 별 생각없이 도서관에서 『질병 해방』을 빌려 왔는데, 어마어마한 두께에 압도되었다. 하지만, 워낙에 흥미진진해서 막상 읽는 중에는 그런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많은 내용을 꽤나 잘 버무린 것같다. 대부분의 내용은 피터 아티아Peter Attia 박사가 썼으나, 책 뒤편 "감사의 글"을 보니 아마도 이런 섬세한 편집에 공동 저자인 빌 기퍼드Bill Gifford의 공도 컸던 것같다.
저자인 피터 아티아 박사는 죽음에 대해서 빠른 죽음과 느린 죽음으로 나눌 수 있다며 『질병 해방』을 시작한다. 빠른 죽음이란 사고사를 의미하고 느린 죽음이란 지병이나 노화로 인한 사망을 의미한다. 그리고, 당연히 책의 내용은 느린 죽음을 최대한 늦추며 무병장수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전문가마다 견해는 다르겠지만 피터 아티아는 느린 죽음에 관여하는 질병으로 네 가지를 언급한다. 심장질환, 당뇨, 암, 그리고 치매다. 병을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해 놓았지만, 이런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은 과도한 당분/탄수화물 섭취, 운동 부족, 수면 부족이다. 즉, 『질병 해방』을 요약하자면 심혈관질환, 당뇨, 암,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 적절한 식사와 적절한 운동, 그리고 적절한 수면을 하자는 내용이다. 말은 쉽지만 지키기 어려운 이야기라 자기 개발서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서 동기 부여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나이를 감안하면 치매와 암은 심혈관질환이나 당뇨에 비해서 다소 대비할 여유가 있는 편이라 주로 심혈관질환과 당뇨에 대한 매커니즘에 더 관심을 갖고 읽어 나갔다. 이미 다른 책을 통해서도 지식을 습득한 바가 있어 좀 더 수월하게 읽히는 편이었다.
담배가 혈관에 엄청나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혈압이 담배만큼이나 나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담배가 화학적으로 혈관에 염증을 일으킨다면, 고혈압은 물리적으로 혈관에 염증을 일으킨다. 혈압 관리가 그래서 엄청나게 중요하다.
혈압이 오르는 이유 중 하나로 혈관벽에 콜레스테롤 등이 쌓이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콜레스테롤이 고혈압을 야기하는 것을 막는 것은 결국 혈당 관리로 귀결된다. 한꺼번에 많은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도록 과당이 많이 들어간 음료를 피하고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을 피하는 것, 매우 상식적인 내용이다.
당뇨는 말할 것도 없다. 위에서 언급한 과장/탄수화물 위주의 식습관이 췌장에게 너무 무리를 줘서 망가지게 되면 제2형 당뇨가 된다. 역시 식습관이 중요하다. 추가로, 유산소 운동을 통해 미토콘드리아가 포도당에 의존하지 않고 지방도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얼마전 건강검진 결과에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낮다는 경고가 나와서 요즘 콜레스테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상태인데 『질병 해방』에서는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좀 낮더라도 HDL-C 하나하나의 퍼포먼스가 좋은 것일 수도 있으니 중성지방이나 LDL-C 수치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LDL-C 중에서도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몇 가지 인자 뿐인데, 그 특정 인자만 낮추는 방법은 딱히 없기에 그냥 LDL-C 수치를 낮추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심지어 피터 아티아는 아기 수준인 10mg/dl까지 낮추라고 권고한다. 나 지금 95mg/dl인데 언제 거기까지 낮추지? 그래서인지 피터 아티아는 스타틴 처방을 지지하는 쪽인 듯하다.
암이나 치매에 대해서는 당뇨나 심장질환에 비해서 궁극적인 해결 방법은 없다며 좀 더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친다. 그저 적절한 식습관이나 적절한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는 것으로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최선인 듯하다.
전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내용이지만 매커니즘을 잘 설명해주니 궁금증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탄수화물이나 과당 섭취는 많이 줄여 놓은 상태이고 더 이상 체중 감량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되었지만 단백질을 좀 더 섭취해야 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단백질이 부족하면 특히 나이들어 고생할테니 몸무게 1kg당 3.7g 수준을 넘지 않을 정도라면 다소 과하게 먹어도 괜찮다는 견해이다. 단백질 보충제를 좀 알아봐야 겠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꾸준한 유산소 운동을 통해 미토콘드리아가 포도당 뿐만 아니라 지방도 에너지원으로 치환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가끔은 숨이 가빠올 정도로 빠르게 달려서 최대 산소소비량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의도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운동 패턴이랑 잘 맞는 듯하다.
그리고 장수를 위해서는 근육량보다는 근력이나 운동 수행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즉 바디 빌딩이 몸을 더 멋지게 보이게 만들 수는 있지만, 운동 수행 능력을 통해서 꾸준히 운동을 해야 나이 들어서 남 신세 안지고 생활할 수 있다. 이 또한 내가 추구하는 바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 물론, 난 근력 운동량 자체를 좀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정말 조금만 하는 상태다.
책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현재의 의학을 의학2.0이라고 평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대응하는 현재의 방법이 너무 늦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주장하는 선제적 대응을 의학3.0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은 아직 주류가 아니며 주장을 지지하는 논문이 나와 있지 않은 경우도 많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생각한다"라거나 "본다"라는 내용도 꽤 있어서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약간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물론, 『질병 해방』에서 급진적인 부분은 LDL-C를 아기 수준까지 낮추라는 주장 말고는 없는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