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뇌』 히가시지마 다케후미
한국어로 출간되는 일본의 과학 분야 서적을 종종 읽게 되는데, 내용이 상당히 파격적인 경우가 많다. 아직 통계를 낼 만큼 많은 단행본을 읽은 것은 아니라 확신하지는 못하겠고, 우연히 또는 뭔가 나의 독서 선택 성향 때문에 그런 책들만 읽게 된 것인 지를 살짝 의심하고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잠들지 않는 뇌』 역시 학계의 주류 의견과는 꽤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저자는 일본의 저명한 뇌신경전문의이자 의학박사로 소개되어 있는 히가시지마 다케후미, 게다가 이 책은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님이 운영하는 YouTube 채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잠들지 않는 뇌』 전체 내용 중 가장 파격적인 주장은 수면 부족이 치매를 유발한다는 근거는 부족하며 아직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상관관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경우 수면 부족에 의해서 뇌에 베타 아밀로이드가 과도하게 축적되는 것이 원인이라고 알고 있고, 학계의 주류 학설이기도 하다. 물론,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아니고, 인과관계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증거가 부족하다 정도의 주장이긴 하지만, 당연하게 알고 있었던 비전문가 입장에서 다소 충격을 받았다.
인과관계가 부족하다고 반박하는 이유는 수면을 통해 뇌를 청소한다는 개념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수면 상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상태에서도 뇌는 청소되고 있으며, 뇌는 잠을 자고 있든 깨어 있든 언제나 깨어 있는 장기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수면을 취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뇌가 아니라 몸 전체의 리커버리를 위해서 반드시 적정 수준 이상의 수면은 당연히 필요하며, 수면을 오랫동안 취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경고한다. 다만, 수면 부족때문에 치매걸릴까봐 너무 스트레스 받지는 말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수면과 치매에 대한 인과관계 논란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하고, 이 외에도 뇌를 새로운 시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에 꽤 흥미롭게 읽어 나갔다. 예를 들면, 위에서 살짝 언급하기도 했지만, 뇌는 정상적인 상태라면 늘 깨어 있으며, 게다가 항상 자극을 원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이 없으면 환각이라도 만들어 낸다. 가끔 완전히 소음이 차단된 공간에 들어와 있으면 환청이 들리는 느낌이던데, 비슷한 매커니즘이 아닐까 생각된다.
뇌의 가소성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기존 지식들이 너무나 강화된 시냅스들로 연결되어 있어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 들여 지기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운 지식을 장기적으로 기억하려면 기존에 오랜 세월동안 축적되고 강화된 기억들을 밀어낼 정도의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망각은 일종의 능력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클라우드 디스크에 기존 데이터를 여러 번 백업해 놓은 상태라 새로운 데이터를 클라우드 디스크와 동기화를 해놓아도 용량 부족으로 동기화가 안되는 상태 정도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까.
같은 맥락에서 다른 세포들처럼 뇌세포가 세포분열을 하지 않는 것은 기존 세포가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는 순간 기억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뇌세포는 어느 정도 분열을 한 뒤에는 더 급진적으로 늘어나는 경우는 없고, 나이를 먹을 수록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줄어 들어도 충분한 수의 뇌세포가 있기에 뇌세포가 죽는 것이 뇌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계산에 의하면 1년에 10만개씩 죽어 나가지만 2000년은 거뜬히 쓸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운동이 기억력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뇌과학자들마다 이렇게 운동을 강조하는 걸 보면 분명 효용이 있는 것같다. 특히, 유산소 운동이 기억력 개선에 도움이 많이 되며, 근력 운동으로 뼈에 자극을 주면 오스테오칼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역시 기억력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아직은 연구단계이긴 하지만 기억해 두어야 겠다.
개인적으로, 기억력 향상 목적은 아니었지만 늦게나마 러닝을 시작한 것은 정말 훌륭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뇌에 대해 무지할 때는 뇌와 이외의 기관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고, 뇌가 인간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뇌와 다른 기관들은 정말 긴밀하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