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영웅의 고뇌와 내적 갈등을 잘 다룬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본 후였다. 그 전까지 베트맨은 그저 DC코믹스의 인기있는 히어로 캐릭터였고, 그가 알아서 고담시를 정화해주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런 소재였다. 그랬던 베트맨이 놀란 감독의 손길을 거치니 무겁고 진지해진 작품이 되어 버렸다.
이번 오디세이The Odyssey 또한, 놀란 감독의 손을 거치면서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은 웃음기가 싹 사라진, 진지하고도 고뇌하는 한 인간의 여정이 되어 버렸다. 상당히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루면서도 그 진지함을 잃지 않는다. 러닝 타임이 워낙 길어 관객에 따라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상영 시간 내내 극도로 몰입해서 함께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응원했다.
워낙에 화려한 캐스팅이라 그저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다들 다른 영화에서는 당당히 주연 캐릭터를 맡을 수 있는 탑 티어의 배우들이 그리 크지 않은 비중의 역할에도 기꺼이 참여했다. 오디세우스 역의 맷 데이먼을 제외하면 모두들 그리 비중이 높지 않다. 어떻게 그들을 이렇게 한 영화에 모을 수 있었을까? 놀란 감독의 힘일까, 아니면 오디세이라는 서사의 매력일까?
그리스 신화나 오디세이아의 이야기들을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다가 이번에 제대로 정리가 된 것같다. 물론, 워낙에 방대한 이야기라 3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에도 생략할 수 밖에 없었던 내용도 있겠지만, 이번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만 봐도 그럭저럭 중요한 이야기는 모두 섭렵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맥스관이 아니라 아쉽지만 일반 상영관에서도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환타지적 요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취향의 관객에게는 호평을 기대하긴 힘들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환타지 영화도 좋아하는 편이라 신화적인 이야기들에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작중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지만 그 어떤 장면에서도 심경의 변화가 없었는데, 오디세우스를 다시 보고서야 편안히 눈을 감던 노견의 마지막에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