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데이즈( Wonderful Days )

미래의 삶을 담은 이야기는 꽤 많은 영화와 만화들로 그려져 왔다. 자, 이런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자. 3차대전이 일어난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방사능에 오염되었고, 이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았던 사람들끼리 첨단 기술의 거대한 돔을 건설해서 자기네 끼리만 살고, 방사능에 오염된 사람들과 분리해서 지네는 이야기. 전후 신분 계층의 성림. 꽤 진부한 이야기가 아닌가! 원더풀 데이즈도 이러한 이야기의 한 종류이다.

에너지 전쟁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오염된 공기와 물을 에너지로써 사용하는 델로스 시스템으로 무장한 도시 에코바를 건설하고,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슷하고도 비슷한 이야기다. 다만, 오염 자체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는 발상은 진부함 속에서 신선함을 끄집어 내었다는 칭찬을 해도 괜찮을 듯 하다.

여기다가 약간의 로맨스를 발라놓은 영화가 바로 원더풀 데이즈다. 좀 더 환경친화적인 결말을 추구한다는 차이점일 뿐 그 진행 자체는 유사하다. 따라서, 우리는 줄거리에 대해서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고, 줄거리에 점수를 매길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원더풀 데이즈의 어떤 점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애니메이션 기술 자체. 바로 그것이다.

원더풀 데이즈는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완전한 3D도 아니고, 그렇다고 2D 일변도도 아니다. 2D와 3D, 그리고 실사 미니어쳐가 곁들어진 기술을 사용한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술이다보니 제작기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 때문에, 처음에는 3D의 느낌을 주는 배경과 2D인 캐릭터들 사이의 이질감 때문에 어색해 하곤 한다. 하지만, 점점 영화에 몰입하다보면 이 이질감에 조금씩 조금씩 순응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후반부로 갈 수록 기술력이 돋보였다고 단정하기 보다는 어색함 자체에 익숙해졌다는 역설적 결론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 이 영화가 망한다면, 앞으로 한국에서는 더 이상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사실, 몇 해전 랜딤이라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소리없이 사라진 것을 보고 이번에도 그런 꼴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더 달랐다. 물론, 100억원이 넘게든 제작비를 뽑을 만큼의 관객이 극장에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아예 망해버렸다라는 말은 피할 수 있을 듯하다. 훌륭한 편이다. 이러한 생각은 처음 볼 때부터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내 관점에서조차 평가받을 수 있을 만큼 돋보이는 수준이다.

환경이라는 조금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야기이고,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을 끌어모을 만한 강력한 캐릭터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국산 애니메이션의 디딤돌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해주고 싶다. 극장에서 돈을 주고 봐서 돈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3류 영화는 확실히 아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