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보은( Cat Returns, The | 猫の恩返し Neko no ongaeshi )

고양이에 대한 인간의 견해는 상반되기 일쑤다. 개처럼 애완동물로 길러지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에게 친숙하지 않은, 때로는 적대적인 동물로 치부되기도 한다. 공포 영화에 단골 손님으로 등장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그만큼 고양이라는 존재는 인간에게 두려움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타국에 비해서 고양이에게 좀 더 관대하다. 물론, 일본 공포 영화에서도 고양이는 등장하지만, 일본만큼 고양이를 사랑해주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고양이의 보은은 바로 고양이와 인간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일본적인 색체가 많이 묻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일본적 색체는 거부감 보다는 이질감이라는 표현이 더 가깝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 이질감 마저도 느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루라는 여고생이 등장한다. 이 애는 학교를 가다가 우연히 한 고양이를 달려오는 차로부터 구하게 되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고양이 왕국에 초청 받는다( 약간은 억지로 간 면이 있다 ). 고양이 나라와 인간 세계의 연결점을 뚜렷이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냥 여기저기 가다보면 고양이 나라다. 반면에 고양이 나라에서 인간 세계로 가는 것은 좀 특별한 장소가 필요한 듯 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은 단지, 그의 이름이 빠졌다고 관객수가 줄어드는 것 이상의 약점으로 드러나게 된다. 고양이의 보은은 그의 영화가 아니다. 단지, 같은 회사에서 제작했다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리스트를 뿌려대고 있는 상황에서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양이의 보은에서는 무언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강도가 매우 약해졌다는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이름이라는 것이 정체성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그리고 환경적 메시지를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 이런 것이 고양이의 보은에서는 너무도 미약하다. 자기 시간에 대해서 인지하라는 좀 강요적인 메시지는 관객들에게 씨도 안먹힌다. 결초보은이라는 사자성어를 굳이 꺼내서 항변한다면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특색있는 주제는 훌륭하지만, 이를 통해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불분명하다는 약점은 감상 후에 느끼는 약간의 허탈감에 일조할 수 밖에 없고, 좀 더 발전하여 돈아깝다는 감정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