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빠져나가면서 사람들이 내밷는 말 중에 가장 많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일단, 1위는 "저거 실제 사건이야?", 2위는 "윽~ 너무 잔인했어.", 내가 임의로 3위를 정한다면 "송강호, 그는 배우야!"

화성군 연쇄 살인사건을 다룬 이 이야기는 크랭크인부터 꽤나 고생을 하면서 만들어졌다. 화성군의 강력한 압력을 받고, 화성군에서 한컷도 촬영을 하지 못했고, 결국 미해결 사건이라는 오명을 남긴 경찰도 부담스러웠는지 협조해주지 않았다.

86년의 이야기니까,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당시에 뉴스를 보려 하면, 9시가 되자마자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CM송이 나와 항상 난 뉴스를 보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어렴풋이 그 당시의 사건들에 대해서 어른들이 대화하는 것은 생각이 난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거나 화성군에 살았던 사람들은 조금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화성군에서 비오는 날에 빨간색 옷을 입은 부녀자들만 그것도 특정 라디오 프로가 방송될 시간에 강간, 살인을 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서울에서 특별히 형사가 내려온다. 토박이 형사와 서울 형사의 자존심 싸움의 시작이다.

사건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나쳐, 멀쩡한 사람을 용의자로 체포해서 갖은 고문과 협박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내어 살인범으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가 잇따르고, 증거 불충분으로 검찰에서 체포영장이 나오지 않는 등, 그들 생각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정말, 80년대 형사들은 과학적이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못하며 수사의 체계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 사건에 비해서 너무 나약해 보인다. 사건이 좀처럼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자, 무당을 찾아가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한다.

상당히 매력적인 영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왜 이러한 화제꺼리가 영화화 되지 못하고, 이제야 살인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었는지 모르겠다.

살인의 추억은 송강호의 영화다. 감독의 의도는 서울에서 내려온 똑똑한 형사 김상경과 무식한 화성 토박이 형사 송강호의 듀얼 시스템을 생각했겠지만, 송강호의 엄청난 토박이 연기에 김상경의 연기는 그저그런 수준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사실 생활의 발견에서 만큼이나 김상경의 연기는 카리스마가 떨어진다 ). 송강호가 주연한 영화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 보아야 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다.

실제로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 미해결 사건으로 끝났으므로, 영화의 결말도 끝을 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오가며 흥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마지막에는 미해결 사건에 대한 여운을 남기기 위해서 엉뚱한 여자 아이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흥미있는 주제를 훌륭한 연기와 공포스러운 연출로 잘 소화해낸 작품이라는 결론을 맺고 싶다. 곧 개봉하는 와일드 카드는 굳이 안봐도 될 것 같다. 형사들의 편치 않은 생활을 이 영화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