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Yepp YP-U3, 만족스러운 DNSe

나의 첫번째 MP3플레이어는 세닉스(Cenix)라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기업의 제품이었다. 아마 지금도 새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512MB에 당시로서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던 녀석인데, 4년 가까이 사용하다보니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워낙에 빨리 발전한 기술때문에 기능은 물론이고 디자인 측면에서도 꽤나 낙후되고 볼품없는 녀석이 되어 버렸다. 또한, 기능상의 문제점도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껐다가 다시 켜면 마지막으로 들었던 곡이 아닌 엉뚱한 곡이 들어가 있던가, 디렉토리 선택시에 화면이 깨진다는 등 자꾸만 나와의 작별을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곤 하였다.
내 MP3플레이어가 보내는 작별의 메시지를 애써 외면해 왔건만, 새로운 MP3플레이어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동생의 은근하면서도 집요한 부추김과 2008년 매출기록을 어떻게든 잘 포장하려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각종 온라인 쇼핑몰의 경쟁적 할인쿠폰 남발은 정말 새로운 녀석과의 만남을 조금 더 빨리 이루어 지게 만들었다.
2009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음악을 듣기 위한 정말 많은 옵션이 있다. 그 중에서도 MP3파일을 이용한 휴대용 플레이어만으로 선택의 폭을 줄여본다면, 동영상까지 가능한 PMP, MP3는 물론이고 작은 파일로 인코딩된 동영상까지 플레이가 가능한 일명 MP4, 그리고 음악재생이라는 기본적 기능에 충실한 여러 MP3플레이어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다. 추가적으로 MP3파일 재생이 가능한 휴대폰도 또 다른 범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
내가 그 중 선택한 옵션은 기본적 기능에 출실한 MP3플레이어였다. 휴대폰의 MP3플레이 기능은 워낙 디지털 컨버전스를 지양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버려졌고, PMP는 가격과 무게 재생시간 문제, MP4는 인코딩따위로 시간을 낭비하고픈 생각이 추호도 없으므로... 이렇게 범주를 줄여도 정말 많은 종류의 업체에서 정말 많은 종류의 제품을 출시하고 있기에 또 다시 고민에 빠졌지만, 기업 인지도를 감안하여 코원, 레인콤, 삼성으로 압축하다 보니 결국 레인콤의 아이리버 볼케이노 시리즈와 삼성의 옙 YP-U3시리즈가 최종 후보에 오르게 되었고, 자잘한 문제가 많이 노출된 볼케이노 대신 삼성의 Yepp YP-U3를 최종적으로 선택하였다. 선택이 끝난 것인가? 아니다 용량과 색깔이 남아 있다. 그 동안 용량 부족 문제로 골치가 아팠던 지라 1GB, 2GB, 4GB 중 4GB를 선택하였고, 4GB제품은 흰색과 검은색 밖에 없었는데 흰색이 더 끌렸다. 이렇게 해서 어렵사리 2008년 느즈막히 새로운 MP3가 생겼고 며칠 사용해본 결과로 이렇게 쓰잘데기 없이 장문의 글을 쓰고 있다.

엉뚱하게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USB로 직접 연결을 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USB연결줄을 사용하게 PC와 연결을 하는 것과는 달리 USB연결단자가 플레이어에 내장되어 있어서 바로 꼽아서 음악을 전송하거나 충전을 할 수 있다. 여행갔을 때 USB연결줄을 안가지고 가서 싫증난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야 했던 기억이 상기되며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리고 삼성이 직접 개발했다는 DNSe 음장효과는 며칠 전에 샀다가 열악한 저음부분에 실망했던 나의 이어클립형 헤드폰(?) ATH-EQ300의 한계점을 보완해 주었다. 아이리버 등에서 사용하는 SRS WOW보다 못하다는 동생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당히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다.
다만 불편한 점을 하나 꼽으라면 다섯 개의 터치버튼인데 디자인을 위하여 감수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고는 하지만, 주머니에 넣고 손가락으로만 컨트롤을 했던 나의 습관을 이 새로운 녀석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눈으로 보면서 터치를 하면 문제 없이 잘 동작한다. 익숙해 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그런데, 고작 MP3플레이어 하나 사놓고 무슨 글이 이렇게 길어졌지? 지름신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변명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