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피치』 닉 혼비

축구와 독서라는 매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취미, 하지만, 찾아보면 그런 사람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축구를 주제로한 에세이가 팔리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꽤나 진지한 아스날FC의 팬인 나로서는 아스날 팬이 썼다는 축구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생애 처음으로 축구 관련 서적을 구입하게 되었다. 축구 잡지하나 사본 적이 없는 나인데...

언급했듯이 『피버 피치(Fever Pitch)』는 작가인 닉 혼비가 아스날FC의 팬이 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얽히고 섫힌 축구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그가 영화/소설 『어바웃 어 보이』로 유명한 작가라고는 하지만 내가 그런 사실을 알고 책을 구입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스날FC라는 팩트만이 유효했다.

저자인 닉 혼비가 보고 느꼈던 아스날FC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아스날FC는 정말 많이 다르다. 그가 강등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이라는 뉘앙스로 아스날FC를 묘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아스날FC는 90년대 중반 아르헨 뱅거 감독이 부임한 후 꾸준히 지금의 아스날 스타일을 가다듬어온 아스날FC이고 닉 혼비가 봐왔던 아스날FC는 그저 뻥축구를 특기로한 팀이었다는 극명한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닉 혼비처럼 뻥축구로 일관하는 중위권 팀에게 애정을 쏟을 수 있었을까? 결코 아니라고 생각된다. 내가 처음부터 가장 좋아하는 팀으로 아스날FC를 꼽게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에 열정을 쏟다 클럽경기를 보게된 이후 잠시 첼시에 열광했고 라리가의 FC바르셀로나에 열광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아스날FC에 정착하게 된 것은 우아하면서도 스피디한 아스날FC만의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FC바르셀로나의 축구가 더 우아할 지라도 빠르지는 않다. 반면,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닉 혼비 자신은 거의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아스날FC라는 팀에 빠져들었던 것같다. 그 팀이 잘하던 못하던지 말이다. 그러면서, 아스날FC를 응원하다가 토트넘 핫스퍼스를 응원하는 팬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여자에게 바람피는 남자는 있어도 축구팀에게 바람피는 남자는 없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졸지에 나는 바람꾼이 되어 버린 셈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아스날FC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 대한 자신의 선호도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당연히 아스날FC가 자신의 팀이며 잉글랜드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자신있게 아무 거리낌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아스날FC경기와 대한민국 A매치가 겹치면 어떤 것을 시청하겠느냐의 대답에 당연히 아스날FC라고 대답한 것이 나를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게 만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잉글랜드는 정말 축구팬들에게 천국이지 않을까 싶다.

닉 혼비는 정말 축구, 아니 아스날FC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그는 아스날FC의 FA컵 결승전이 아내의 출산일과 겹칠까봐 두려워 하며, 미래에 그의 자식들이 아스날FC가 아닌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것을 걱정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아스날FC의 후배 팬으로서 난 그가 정말 멋진 사람인 것같다. 세상에는 무엇인가에 열정을 쏟아붓는 것을 한 번도 안해본 사람이 정말 많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닉 혼비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물론, 그의 행복이 주변인들의 행복에 약간의 방해가 될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