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20세기(the Long Twentieth Century)』 지오반니 아리기

요즘들어 세계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곤 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80년대에는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다는 소리가 나왔었는데, 21세기에도 미국은 건재하지 않느냐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런 반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는 사실에는 대부분 공감을 하는 듯 보인다. 다만, 그것이 언제이냐에 대해서 논란이 일고 있을 뿐이다.

결국 과연 미국의 헤게모니는 언제까지인가를 넘어서 헤게모니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그 궁금증을 풀어줄 가장 적합한 책으로 조반니 아리기의 『장기 20세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추가적으로, 또다른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의 저서인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 『베이징의 애덤스미스』를 읽을 계획을 세웠고, 출판 순서대로 우선 『장기 20세기』를 펼쳐 보게 되었다.

『장기 20세기』는 세계의 헤게모니가 어떻게 지금의 미국에 다다르게 되었나에 대한 금융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즉,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그리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어떻게 그들이 세계 금융을 장악했는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기술되어 있고, 더 나아가 미국은 지금 헤게모니 흥망성쇠의 과정 중 어디까지 왔는가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고백컨데, 내가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책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정독을 하고 분석을 하며 공부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나같은 경우는 이동 중에 생긴 자잘한 시간들을 이용했기에 독서의 맥이 끊기는 것이 다반사였고, 학문적인 접근에 대한 적극성이 다소 떨어진 상태에서 방대한 양의 정보를 특별한 배경지식도 없이 습득하자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중간에 읽다가 이해가 안가서 10여페이지 앞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었던 경우도 다반사였다. 몇 백년간 고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헤게모니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하다고 볼 수 있다.

간간히 적어 놓은 메모를 보면서 힘겹게 내용의 일부를 간추려 보자면 이렇다.

네덜란드가 제노바로부터 헤게모니를 가져온 것은 항로를 독점했기 때문인데, 제노바가 국가적 차원에서의 군사력을 동원할 수 없었던 반면, 네덜란드는 제노바 수준에 더하여 항로를 개척함과 동시에 이 항로들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월한 입장에 설 수 있었다. 이를 보호비용의 내부화라고 표현하였다.

영국은 이에 더하여, 자유무역과 제국주의라는 기치를 내걸고 적극적인 식민지를 개척을 통하여 생산비용을 내부화함으로서 효율을 높일 수 있었고, 이에 따라 자본의 축척이 점진적으로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이동하였기에 그들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즉, 네덜란드가 유통에만 전념하였다면, 영국은 유통 및 생산까지 독점을 하였다는 의미이다.

다시 영국에서 미국으로 헤게모니의 이동이 일어난 것은 거래비용의 내부화라는 표현으로 요약해 놓았는데, 영국이 식민지 개척을 통하여 생산 효율을 높이려고 했지만, 역시 거리상의 문제도 있거니와 식민지들을 관리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미국은 대륙 전체를 잠재적인 생산시설로 가정하고 그냥 살고 있는 인디언들만 쫓아 내면 되니, 비용의 측면에서 좀 더 효율적이었다. 아마도 이를 비용의 내부화라고 표현한 듯하다.

각론은 위와 같고, 총론적으로 접근해 보면 이렇다. 헤게모니의 성장과 쇠퇴의 과정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자면, 위에 언급했던 생산 효율의 우월성을 통하여 헤게모니가 확장되고, 이 생산의 효율에서 우월적인 요소들이 점차 따라잡히게 되면 그동안 축적되어 온 자본을 통하여 금융의 우월성으로 다시금 찬란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이 돈놀이가 끝나면 정점을 지나 서서히 꺾이게 되고, 다른 생산 효율의 우월성을 지는 집단에게 권력을 내주게 된다.

위 과정을 토대로 보면, 이미 미국은 생산 효율에 대한 우월성을 상실한지는 오래이고, 금융을 통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으며, 이제는 정점을 지나 서서히 쇠퇴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전성기는 이미 끝나야 했지만, 몇 번의 전쟁, 즉, 한국전쟁, 베트남전, 걸프전 등을 통하여 헤게모니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을 다 읽고난 후에도 과연 미국의 시대는 언제 끝날 것이며, 다음 헤게모니는 과연 중국일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풀어진 것은 아니지만, 헤게모니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은 많이 해결된 상태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베이징이 애덤스미스』라는 책을 펴낸 것을 감안한다면, 조반니 아리기도 다음 패권은 중국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당장이라도 나머지 두 권을 읽어보고 싶지만, 방대한 분량에 질려 잠시 쉬운 책 몇 권을 읽은 후에 시작하려고 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