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 지오반니 아리기, 비벌리 J. 실버

지난 5월, 지오반니 아리기의 다른 책인 『장기 20세기(the Long Twentieth Century)』를 읽고 난 후, 그의 저서 두 권을 더 읽기로 하였고, 그 두권 중 하나가 바로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Chaos and Governance in the Modern World System)』이다.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는 『장기 20세기』에 비하여 각론에 좀 더 초점을 맞춰 기술한 것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물론, 내가 두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여도 완벽히 이해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정적으로 표현한 사견임을 밝혀 둔다.

두 책은 당연히 중복되는 부분이 많은데, 그렇다고 두 권 중 한권만 읽는다는 것도 아쉬운 면이 있다. 따라서, 헤게모니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두 권 모두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각 책이 비슷한 흐름으로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각기 강조하는 바가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묘하게 다른 시각을 발견할 수도 있고, 새롭게 제시된 근거를 캐치할 수도 있다.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를 읽고 캐치한 각론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네덜란드가 어떻게 당시 실질적인 유럽의 지배자였던 스페인을 물리치고 헤게모니를 얻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당시 스페인은 남아메리카에 대한 압도적인 지배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양의 은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스페인의 힘이었다. 이 힘을 깨뜨린 것이 바로 네덜란드의 해상력이었는데, 거의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네덜란드의 장점인 해상에서의 힘으로 스페인의 은 유통항로를 줄기차게 교란시키며 스페인이 가지고 있던 힘의 원천을 약화시켰다. 더불어 발트해 연안에서의 우위를 지켜나감으로써 점차 암스테르담이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우뚝섰고, 자연스럽게 금융의 중심도 암스테르담이 되었다.

네덜란드에 대한 흥미로운 점 한가지가 더 있는데, 당시의 네덜란드는 국가라는 범주에 넣기가 상당히 애매한 세력이었다는 사실이다. 즉, 베네치아같은 도시국가보다는 발전된 형태이기에 도시 국가라고 칭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왕정 국가들과 같은 중앙정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결국은 이런 애매한 연방형태의 한계로 인하여 차후에 영토국가 중 하나인 영국에게 헤게모니를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여러 가지 세부적인 이유가 있지만, 총론적인 측면에서 국가의 형태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의 패권이동이 이루어 진 것은 본격적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가 수준에서의 결집된 힘을 발휘하기에는 어려웠던 네덜란드는 영국과 프랑스의 견제, 더 나아가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 힘을 잃기 시작했고, 경제적으로 유럽 내 국가들간에 노동력 확보 경쟁으로 노동력 확보가 어려워 진 네덜란드는 무역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무역의 중심이 점점 암스테르담에서 런던으로 옮겨 지기 시작하였다.

또한, 영국이 인도를 정복함으로 인하여 엄청난 양의 금을 들여올 수 있었기에 암스테르담에 의존했던 금융 의존도 또한 점점 약화되어 결국 런던이 금융 패권마저 장악해 버리게 됨으로 인하여 실물과 금융의 모든 패권은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이동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이동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영국으로 하여금 쌓아 놓았던 대부분의 잉여 자본을 지출케 하였는데, 이것이 미국으로의 패권이동을 가속화 시켰다. 게다가 미국이 무기판매를 통하여 벌어들인 부를 이용하여 영국에게 빚진 채무를 상환해 버림으로서 파운드화의 결제통화로서의 힘은 급격히 약하됨과 동시에 달러의 시대가 개막된다. 즉, 국민국가의 형태의 영국이 군산복합체로서의 미국에게 압도당해버린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20세기 초반에 있었던 대공황이 실제로는 영국의 헤게모니가 무너지는 전환점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대공황은 당연히 미국의 문제였다고 생각했는데, 영국의 몰락과 연관지어질 줄은 몰랐다. 이와 마찬가지로 1997년에 일어났던 동아시아국가들의 아시아경제위기가 동아시아국가들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헤게모니 약화의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내용은 꽤나 인상깊었다.

책 후반부에는 국가를 배후에 둔 기업들 동인도회사 등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기업측면에서의 헤게모니를 바라보는 시각은 나에게 다소 난해하기도 하거니와 책을 택했던 목적과도 점점 거리가 멀어져서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기에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이제 앞으로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만 읽으면 미국의 헤게모니가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일본이 다음 헤게모니가 될 수 없었는 지에 대한 내용도 이 책에서 약간이나마 분량을 할애하고 있지만, 다음 책에서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같다. 기대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