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조반니 아리기

이번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를 끝으로 목표로 하였던 헤게모니 관련 조반니 아리기의 세 저서를 모두 읽어 보게 되었다. 엄청난 숙제를 마무리한 느낌이다. 『장기 20세기』와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를 통하여 헤게모니에 대한 광활하고도 깊이 있는 내용에 대하여 어느 정도 습득을 할 수 있었으며, 이번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를 통하여 다음 헤게모니의 정착지가 어디가 될 것인가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 있는데, 제목만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1. 애덤 스미스와 신아시아시대
2. 전 지구적 혼돈을 쫓아서
3. 헤게모니의 해체
4. 신아시아 시대의 계보

즉, 이 책에서 조반니 아리기가 본격적으로 중국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마지막 제4부부터이다. 그 전에는 기존 『장기 20세기』와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에서 소개한 헤게모니의 생성과 해체, 그리고 이동에 대한 이론적인 서술을 토대로 기존 헤게모니의 생성과 해체를 역사적인 시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물론, 기존 저서에서 이론에만 치우치지도 않았고, 이번 책에서 예시만 써놓은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기존 두 저서를 세 개의 파트에 걸쳐 요약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조반니 아리기는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하여 긍정적인 입장이다. 미국의 헤게모니가 해체된 이후에 그것이 중국, 또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로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책을 썼으니, 당연한 관점이기도 하다. 아직 미국의 헤게모니가 끝났는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지만, 조반니 아리기는 강경하게 이미 미국의 시대는 끝났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책 마지막 부분에 옮긴이의 서술에 의하면 2008년 전세계가 금융위기의 공포로 치닫기 2~3달 전에 이 책이 출간되었고, 그래서 조반니 아리기는 미국의 몰락을 예언한 사람으로 유명해 졌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그를 알게 되어 그의 저서를 세 권씩이나 읽게 된 것도 이와 같이 그가 유명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왜 그 많은 국가중에 중국인가에 대한 대답으로써, 조반니 아리기가 제시하는 몇 가지 근거 중 첫번째로, 중국이 우선 농업혁명으로 중국 내부의 극빈층의 비율을 최소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단지 인구가 많다고 하여도 이들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었다는 의미다. 이것이 인도가 성공하지 못하고 중국이 성공한 이유이며, 두번째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근면 혁명으로 엄청난 노동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동혁명은 동아시아 이외의 어떤 곳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 조반니 아리기가 제시한 농업혁명과 근면혁명은 중국이 급속히 발전한 이유라고 한다면 매우 공감이 갈 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미국의 헤게모니를 넘겨 받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이 있는 것인가에 대한 대답으로는 그다지 공감을 하기가 어렵다.

책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애덤 스미스에 대한 자본론을 중심으로, 한 편으로는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자본론으로 서술하곤 하는데, 이 부분은 다소 이해가 가지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옮긴이의 해설부분에서 잘 요약이 되어 있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따르면, 자본의 본질은 축적이고, 자본의 이윤 극대화는 결국에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러한 시점에서 자본은 자신의 이윤극대화를 계속할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을 찾게 되고 이것이 이야기했던 헤게모니의 이동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헤게모니의 이동 또는 자본의 이동은 계속 더 큰 그릇을 필요로 하고, 실제로 역사적으로 헤게모니 이동의 과정은 점점 더 큰 그릇으로 이동해 왔다. 즉, 도시국가였던 제노바/베네치아에서 도시국가와 영토국가의 중간단계인 네덜란드, 그리고 다시 영토국가인 영국으로, 또 사실상 대륙의 크기인 미국으로 이동을 했음이 그 예이다. 이 과정대로라면, 적어도 미국수준의 영토를 가진 나라만이 다음 헤게모니 세력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중국은 인구도 그 몇 배에 이르니 이런 요건으로만 본다면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자연스럽게 일본은 안되고 중국은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에도 대답이 된 것같다.

여전히 미국은 전세계에서 최강자이지만, 소련붕괴이후 사실상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을 과거와 비교해보면 자기 앞가림 하기도 힘든 처지에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을 일컬어 G2시대라도 하고, 절대 강자의 부재를 의미하는 G0시대라고도 하는데, 헤게모니의 관점에서 보자면 헤게모니 없는 지배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늘 헤게모니의 이동에는 전쟁이 수반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조반니 아리기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중국은 에너지를 외부로 확장시키려는 서구의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고 내부로 응축하려는 성향이기 때문에 평화로운 권력 이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트러블들은 왠지 다음 헤게모니의 이동이 그리 평화로울 것만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작고한지 얼마 안된 조반니 아리기가 아직 살아 있다면 여전히 그런 전망을 고수할 지는 잘 모르겠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