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이라는 주제로 고갱전이 열리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듯 인상주의 애호가인 나이지만, 인상주의 계보에 살짝 발을 걸치고 있는 고갱임에도 그다지 선호하는 작가는 아닌지라 갈까말까 망설인 끝에, 그래도 한국에 왔을 때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하였다. 생각외로 그의 명작품, 아니 그의 3대 작품이라고 불리우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설교 후의 환상", "황색 그리스도"이 모두 전시되어 있으므로 2013년 전시회 중 꽤 비중있는 전시회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이유, 즉 고갱에 대한 지식 부족, 낮은 선호도 등의 이유로 진지한 관람이 되지는 못했다.

평일 방문이어서인지 인파에 휩쌓여 그림반 사람반 같은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인적이 드물 정도도 아니었다. 늘 그렇듯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하여 그림 하나하나에 적절한 시간을 부여하며 그냥 훓어 보듯 스르르 보고 나오게 되었다.

난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들보다는 인공적이고 잘 꾸며진 문명의 세계를 훨씬 더 사랑하는 것같다. 그래서 난 여전히 고갱보다 르누아르를 훨씬 좋아한다. 그림 전반에 흐르는 심각함과 무거움, 인생의 고뇌, 삶에 대한 직설적이고도 꿰뚫는 듯한 질문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은 그림을 보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런 것들은 현실에서 이미 충분히 절감하고 있는데 왜 내가 그림을 보면서도 이런 것을 느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갖는 것을 보면, 내가 미술을 대하는 태도는 다분히 현실도피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게다. 아마도 고갱은 나같은 사람, 즉 그냥 취미삼아 교양쌓으려고 이쁜 그림만 좋아라 하는 나같은 인간에게 환멸을 느끼며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풀리네시아로 도피(?)하지 않았을까!

고갱의 작품을 좋아하기엔, 난 문명의 때가 너무 묻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