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

괴물과 설국열차 이 두 영화만 놓고 본다면 봉준호 감독의 작품은 정말 딱 내 취향이다.

봉준호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우려반기대반의 생각으로 극장을 찾았다. 박찬욱 감독의 첫번째 헐리우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커를 본다면 여러 가지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그만의 색깔이 다소 퇴색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 기대하는 바를 그대로 충족시켜 주는 듯하다.

괴물을 봤을 대 내가 열광했던 것은 은근슬쩍 남겨 놓은 반미코드였다. 물론, 내가 반미주의자도 아니고, 더군다나 진보주의자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열광했던 것은 영화 자체의 작품성에서도 나쁘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기도 하였거니와, 꽤 현실적인 정치코드가 영화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어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곱씹어 볼 수 있는 "생각해볼 꺼리"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 설국열차에서는 좀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데, 혁명은 이로운 것인가, 혁명이 성공한다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라는 의문부호가 그것이다. 때론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액션물을 즐기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할 꺼리를 제공하는 영화는 두손 들고 환영하는 편이다.

보수주의자의 관점에서 만약 내가 꼬리칸에 타고 있는 승객이라면 어찌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보았을 때, 아마도 내가 추구하는 것이 혁명은 아닐 것이다. 분명 혁명이라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의 선택일 테니 말이다. 즉, 나였다면,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어필하여 앞쪽칸으로부터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꼬리칸에 타고 있던 바이올리니스트가 그랬듯이... 난 아나키스트같은 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체제 순응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혁명이라는 것은 단어 자체에서 이미 성공을 가정한 것이고 또한 많은 이들의 합의에 의한 것이니 만큼 꽤나 매력적으로 보이는 행위이긴 하지만 현실은 상상만큼 달콤하지 않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다. 게다가 혁명이 추구하는 것은 계급 이동이긴 하지만 혁명의 성공이 계급간의 이동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커티스는 혁명을 주도하고 성공하기까지 하지만 계급의 이동은 그조차 어찌하지 못한다. 아마도 설국열차 전반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이런 것일게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이런 와중에 열차의 보안설계자였던 남궁민수는 제3의 선택을 추구한다. 즉, 열차를 탈출하자는 것! 열차 바깥 세상은 생각만큼 춥지 않음을 커티스에게 설득하려 하지만 이 주장을 받아들이기엔 이미 커티스는 목표가 뚜렷했고 또한 열차 밖의 세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것은 혁명보다도 어려워 보인다. 이 또한 참으로 현실의 축소판이 아닌가!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체제를 지키거나 따르려는 자들이 대부분이고 이를 전복시키려는 소수가 있으며 또 누군가는 조직을 떠나게 마련이다.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반스Chris Evans가 혁명의 주역인 커티스를 연기했고 열차의 보안설계자인 남궁민수는 송강호. 커티스 역할은 기존의 크리스 에반스와는 너무도 달라 크레딧을 미리 확인하지 않은 나로서는 나중에서야 그임을 깨달았다. 또한 송강호의 연기는 기존에 우리가 인식한 맛깔스러움 때문에 이러한 진지한 역할에도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우려를 했었는데, 진지함과 맛깔스러움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연기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커티스의 긴 독백씬이었는데, 물론 그 독백은 진지했고 공감이 갔지만, 영화를 말로 다 풀거면 뭐하려고 영화를 찍냐는 비난을 불식시킬 정도의 압도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은 아니었다. 뭐 이해는 간다. 그런 롱테이크는 연기하기도 힘들 뿐더러, 예산과 러닝타임, 그리고 등급판정을 고려한다면 커티스의 독백은 영상으로 촬영되기에는 확실히 무리가 있다.

영화의 미장센도 칭찬해주고 싶다. 꼬리칸의 우중충한 무채색은 앞쪽 칸에서 보여주는 현란함과 화려함을 극대화시키고, 또한 엔진룸의 현대식 인테리어를 돋보이게 한다. 실제 원작 만화에서는 천칸이 넘는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많이 축소되어 있다. 천칸이면 혁명하기도 참 힘들겠다 싶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