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얼마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지브리 스튜디오 레이아웃전을 관람할 때 즈음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선언이 있었고 그의 마지막 작품이 스크린에 걸렸다기에 극장을 찾았다. 그의 작품을 열렬하게 좋아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의 작품을 볼 때 후회되었던 적은 없었기에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참 아쉽게 다가온다.

마지막 작품이라서였을까, 그의 작품에서 흔히 나타나는 초현실주의나 동화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매우 담백하게 현실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었다. 2차대전 당시의 일본 가미가제 전투기로 사용되었던 제로센의 창시자 호리코시 지로의 일대기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그려 내었다.

일본에서는 그냥 역사를 투영하는 애니메이션 정도로 보겠지만 한국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일 수 밖에 없다. 일본 전투기의 제작과정을 담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상이 어떻든 이미 한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린 셈이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엄연히 일본인, 그가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작품을 만들길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이지 않을까? 그들이 2차세계대전의 희생자라고 교육받았다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굳이 한국인으로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이 작품을 외면하겠다면 그것도 뜻있는 생각이니 존중한다.

영화이야기로 돌아와서, 주인공인 지로는 어렷을 때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고 파일럿을 꿈꾸다가 (시력이 나빠서였는지) 비행기 제작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를 위해 정진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비행기가 민항기로 사용되길 간절히 바란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매우 담백하게 한 엔지니어로서 훌륭한 기체를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지로를 묘사하고 있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한국전쟁 이후 전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된 일본이고 또 그런 일본을 보고 자라서인지 2차세계대전 중임을 감안하더라도 일본은 가난하여 독일과 같은 비행기를 만들지 못한다고 떠드는 장면에는 공감을 하기가 꽤 어려웠다. 소달구지로 비행기를 끄는 장면은 참...

담백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 공돌이들은 연애에 참 서툴게 마련인데 이 양반은 바쁜 와중에 틈틈이 연애도 참 잘한다. 그런데 그 연애가 참 애잔하다. 담백함 속에 갑자기 찾아온 이 애잔함이라 그런지 그 울려퍼짐이 좀 크다. 늘 마지막이라는 것은 있게 마련인데 이런 상황에 적응하여 의연하기는 쉽지 않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