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미리 상영관 스케줄 다 파악하고 개봉 당일에 영화관을 찾는 나의 성향을 감안하면 꽤나 늦게 겨울왕국을 보게 되었다. 꽤 오래전에 트레일러를 봤을 때 딱히 임펙트가 없는 것 같아서 이 애니메이션을 볼 생각이 별로 없었으나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꽤나 흥행을 하고 있고 특히나 한국에서는 거의 겨울왕국 열풍이 몰아 치고 있는 터에 그래도 이렇게 많은 관객이 찾고 있다면 다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뒤늦게 나마 극장을 찾은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딱 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만큼만 재미있다. 물론, "Let It Go"라는 노래가 워낙에 훌륭하기는 하지만... 도대체 이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이렇게 먹힐 줄이야... 내가 생각한 겨울왕국의 흥행 요인은 이렇다. 첫번째로 여성의 수동적인 왕자님 기다리는 이야기가 아니고 여자 메인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주도한다. 엘사와 안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21세기에 어울리는 애니메이션이라고나 할까. 둘째로 나쁜 왕자의 존재. 늘 왕자는 공주를 구해주게 되어 있는데, 이건 왕자가 출세하려고 안나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통쾌하게 이 나쁜 왕자를... 나쁜 남자에게 한 번이라도 당해본 여자라면 이 얼마나 유쾌한 이야기이겠는가! 마지막으로 자매간의 우정. 이건 아무래도 자매지간인 경우에 좀 더 뭉클하지 않난 생각이 든다.

위에서 언급한 성공요인들은 대체적으로 여성관객에게 감동을 주었겠지만, 남성관객들까지 포용하기는 힘들 듯하다. 실제로 남성관객으로서 난 그다지 특별한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고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기승전가족"이구나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물론, "Let it go"가 나올 때는 꽤 짜릿해서, 이 3분을 위해서 보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여성관객들이 정말 많이 울었다라며 극찬을 하면, "어느 장면에서...?"라고 다시 묻는다. 영화를 보면서 잘 우는 나지만, 눈물이 나올 씬이 전혀 생각이 안나니...

딱히 감동적이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엘사가 만들어 내는 얼음성같은 건 하나 가지고 싶다. 저어기 양수리 어딘가에 땅 몇 마지기 사놓고 거기다가 얼음성 하나 만들어서 도시 생활이 살짝 지겹다 싶으면 가서 며칠 지내다 올 별장으로 그만한 성이 없을 듯하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