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빅픽처The Big Picture』로 유명한 더글라스 케네디Douglas Kennedy 또 다른 소설이다. 더글라스 케네디 작품으로는 두번째 만남이다. 워낙에 처음 읽었던 『빅픽처』가 임펙트 있었기에 이번에 읽게된 『위험한 관계A Special Relationship』도 꽤나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 『위험한 관계』 또한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무래도 『빅픽처』와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초반은 다소 평범한 기자들간의 로맨스로 시작한다. 우리식으로 치자면 결혼적령기는 살짝 지나간 두 남녀간에 갑자기 불이 붙고 곧 결혼한다. 평범하지만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러나, 중반쯤 셀리가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부분에서는 정말 미쳐 버리는 줄 알았다. 여기까지만 볼 때는 정말 셀리가 악역이라고 생각했다. 막 짜증이 날 정도로 답답했다. 산후우울증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만약 미래에 내 아내가 이런다면 내가 다 받아줄 수 있을지, 뭐 이런 상상을 하다보니, 역시 난 훌륭한 남편감은 아닌가보다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후반부는 뭐 알다시피 나쁜남자 토니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 법정스릴러 모드!

더글라스 케네디는 마치 모든 걸 다 해본 듯이 소설속에 전문지식을 쏟아 낸다. 게다가 그 전문지식이 독자에게 어렵지 않도록 잘 안내해 주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그가 이 모든 걸 다 해보지는 않았을테니,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하고 소설을 쓴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위험한 관계』에서는 의학적지식이라고 한마디로 넘어가기 힘들 정도로 산후 우울증을 겪는 여자의 심리적인 묘사를 세밀하게 내 놓았으며 (그 세밀함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법정스릴러를 연상케하는 수준의 법률지식을 쏟아 놓는다. 물론,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 수준으로!

아마도 기욤 뮈소Guillaume Musso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작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기욤 뮈소가 그의 작품들에서 뭔가 비슷한 패턴이 보이고 좀 비슷비슷한 느낌이었다면 더글라스 케네디는 (내가 아직 작품 두 개만 읽어서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꽤나 각각의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흥미꺼리는 미국인의 시각으로 본 영국인과 미국인의 차이점을 재치있게 묘사해 놓았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묘사로 보아, 미국인들은 영국인을 만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느끼는 듯하다. 또한, 뼈있는 농담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국식 블랙코메디라고 하는 것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약간 역설적인 표현도 있는데, 미국인은 인생을 심각하지만 가망 없진 않다고 믿고, 영국인들은 인생을 가망 없지만 심각하진 않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 말을 풀어보면, 미국인들이 보는 인생은 역경을 딛고 나아가면 희망이 보인다고 생각하고, 영국인들은 한마디로 "인생 뭐 있나?"라는 마인드로 그냥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럭저럭 견뎌가며 살아간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