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 @가나인사아트센터

한국근대미술에 대해서 그나마(?)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지난번에 관람했던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이라는 전시회 이후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미술에 관심이 있다라는 것은 파리를 중심으로한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 한정되어 있기에, 이를 벗어난 작품들은 나에게 그저 "기타" 카테고리에 들어 간다. 그러기에, 세계 미술사에서 비주류 중에서도 변방 끝에 위치한 한국미술은 나에게 "기타" 카테고리에서도 매우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본질적으로 내가 어떤 분야든간에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접근을 지양하고자 하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는 일제치하의 불편한 시대가 미술작품에도 반영되지 있기 때문이다. 보기가 참 불편하다. 내셔널리즘의 측면에서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이미 역사교육으로 세뇌된 난 이를 편하게 제3자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다.

박수근의 작품들은 기법으로보나 내용으로 보나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물론, 그가 그린 내용은 625를 전후한 피폐하고 힘겹던 서민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긴 하다. 따라서, 특별하게 다가왔다는 것은 좀 다른 관점에서 언급한 것인데, 그는 그 피폐하고 힘겨워야할 서민들의 삶을 매우 무미건조하게 표현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아낙네들, 그들의 삶은 분명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박수근은 그림으로 그들의 힘겨움을 애써 반영하려 하지 않은 것 같다. 그저 그들은 이집트벽화에 그려진 노예들과 같이 어떠한 감정도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더 나아가 그저 그런 소박한 삶에 만족하며, "인생이 다 그런거지 뭐, 허허허"하고 자족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이게 나의 자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감상이니 전문가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기법은 누구나 그가 만들어낸 특유의 거친 캔버스느낌에 대해여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질감이라는 표현으로 마티에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런 박수근이 만들어낸 화강암같은 마티에르는 그 과정의 고됨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인상을 준다. 이런 캔버스 상태에서 등장인물을 강조할 수도 있고 흐릿하게 표현할 수도 있는 것같다. 난 이 거친 캔버스의 느낌이 정말 좋다.

이번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고객사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인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어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갔다온 것인데, 1시간 30분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감상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시간이 다소 촉박하여 조금 서둘러 본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지난 덕수궁관에서 있었던 한국근현대회화 100선은 많은 한국 화가들이 등장하여 한국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지만, 이번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은 박수근이라는 화가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좀더 심도있게 그의 미술철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더 훌륭한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난 한 화가의 작품만으로 여는 이런 전시회를 훨씬 더 선호한다. 그 화가 특유의 스타일을 확실히 각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회 기간이 얼마 안남은 상황이라 그런지 작은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회임에도 꽤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놓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번 전시회는 만족스러웠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