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날 2014 FA컵 우승! (눈물 찔끔)

내가 응원하는 팀들은 늘 우승과는 살짝 또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더이상 한국프로야구에 관심을 갖지는 않지만 LG트윈스가 그러했고, EPL에서는 아스날FC가 그러했다. 베르캄프가 은퇴를 할 즈음해서 아스날을 본격적으로 팬으로서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에 아스날이 우승트로피를 든 적이 없으니 내가 라이브로 아스날이 트로피를 드는 장면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며칠전 맨시티가 EPL 우승 트로피 드는 모습을 질투가 나서 차마 보지 못하고 그냥 꺼버렸었는데, 그나마 FA컵이라도 들게 되니 좋은 위안꺼리가 된다. 사실 이거 참 자중해서 쓰는 중이다. 트로피 드는 순간 눈물 찔끔했다.

축구팬들의 시선은 아마도 바르셀로나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스페인 라리가 우승을 거머쥔 아틀란티코 마드리드에게 쏠려 있겠지만, 아스날 팬들만큼은 고작(?) FA컵이라도 얼마나 소중한지...

이 FA컵마저 쉽지 않았다. 헐 시티에게 첫골을 먹혔을 땐 지난 버밍험과의 결승전이 떠올랐고, 또 한 골 먹힌 이후에는 거의 절망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카솔라의 프리킥 골로 한 점 따라붙은 후부터 경기력이 올라오고 점유율을 끌어 올리면서 희망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코시엘리의 동점골이 터지면서 커지기 시작하여 이후 (전반전에 오버페이스힌 경향이 있던) 헐시티의 체력이 바닥나버린 상태에서 연장을 간 이후에는 꽤나 희망적이었으며 얼마 안있어 램지가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이번 시즌 꽤나 오랫동안 1위에 랭크되어 있었지만 사실 아스날팬 누구나 (차마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내려오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EPL 우승에 대한 꿈은 사실상 그저 꿈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FA컵은 현실적인 목표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년 시즌이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내친 김에 이번 FA컵 우승을 부활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싶긴 하지만 여전히 EPL에는 압도적인 재정능력을 보유한 팀이 즐비하기에 이번 시즌보다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또다시 챔피언스티켓이 간당간당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틀란티코 마드리드가 열악한 재정속에서도 우승을 거머 쥐었듯이 축구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스날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뱅거감독, 일주일에 한번꼴로 보다 보니 잘 몰랐는데, 베르캄프 은퇴할 시절 사진하고 비교하니 많이 늙었다. 이제 뱅거감독이 은퇴할 날도 몇년 안남은 것같은데, 그 전에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 한번씩만 했으면 좋겠다. 팬들도 좋고 감독 본인도 좋고, 선수들도 좋고...

기분 아주그냥! 날아갈 것 같이 좋은 날이다.

이상욱